이우환의 우주, 렘브란트를 초대하다

K아트, 현대미술 심장부로
이우환, 베를린서 회고전
50년간 쌓은 미학 집대성
렘브란트 자화상과 조화
추상미술 아이콘 유영국
뉴욕서 첫 해외 개인전
서도호·신미경·함경아 등
중견 작가들도 세계 누벼

렘브란트의 '벨벳 베레모를 쓴 자화상'과 나란히 설치된 이우환의 '관계항'.

렘브란트와 이우환이 베를린의 미술관에서 만난다.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페이스갤러리에서는 한국의 산천을 추상미학으로 표현한 유영국이 소개된다. 거장부터 신예까지 아우르는 한국 미술 기획전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미술관에서 나란히 개막했다. 올해는 한국 미술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원년으로 기록될 것 같다. 지난 9월 뉴욕에서 실험미술전이 성대하게 막을 올린 데 이어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서 K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개막을 알리고 있다. 지난 9월 1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국립현대미술관과 손잡고 개막한 '한국 실험미술 1960~1970년대' 전시가 성능경 김구림 정강자 등을 망라해 소개하며 성대하게 개막한 것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지난 10월 21일 미국의 저명한 미술관인 필라델피아미술관에서 한국동시대미술전 '시간의 형태(The Shape of Time)'가 개막했다. 서도호 신미경 정연두 함경아 등 한국 동시대 미술 작가 28명이 참여하는 미국 내 역대 최대 규모 전시다. 동시대 미술 30여 점을 통해 도시화와 산업화, 정치적 긴장 등 1980년대 후반부터 급변한 한국 사회를 조명한다. 우현수 필라델피아미술관 부관장의 기획으로 전시가 가능했다.

뉴욕을 대표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은 삼성문화재단 후원으로 11월 7일 개막해 내년 10월 20일까지 '계보: 메트의 한국 미술'(Lineages:Korean Art at The Met) 전을 연다. 12세기 도자기부터 21세기 사이보그 조형물까지 아우르는 작품 30여 점을 소개한다. 미술관의 한국관 25주년을 기념한 전시로 서세옥의 수묵화 '사람들'(1988)과 김환기의 '달과 항아리'(1954), 권영우의 '무제'(1984), 이유태의 '인물일대-탐구'(1944), 이불의 '사이보그' 연작(2000) 등을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미술관 등에서 빌려와 전시한다. 메트는 "시간을 초월해 울려 퍼지는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하나로 묶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생의 찬미'전도 지난 10월 28일 개막해 내년 3월 3일까지 미국 샌디에이고미술관에서 열린다. 작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기존 전시를 바탕으로 미국 현지 관객을 고려해 일부 내용이 재구성됐다.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의 전통회화 작품들을 비롯해 한국 동시대 작품들까지 총 34명의 작품 50여 점을 공수했다. 김종학 '현대 모란도'(2006), 박생광 '무속16'(1985), 오윤 '무호도(舞虎圖)'(1985), 이응노 '구성'(1974) 등 회화부터 성파 스님의 '수기맹호도(睡起猛虎圖)'(2012)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다. 지난달 28일 열린 개막식에는 김용철 김혜경 홍지윤 안성민 등을 비롯해 샌디에이고 문화계 인사 5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록사나 벨라스케스 샌디에이고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미술에 관한 새로운 시각이 제시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7일부터 베를린 함부르거반호프미술관에서 이우환의 개인전이 개막해 내년 3월 10일까지 이어진다. 거장의 50년 예술활동을 아우르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50여 점의 회화, 조각, 설치작품 등을 선보인다. 전시는 자연 고유의 재료인 돌, 흙 등과 산업 재료인 강철, 캔버스 등으로 구성돼 개별 요소의 유동적인 관계를 탐구하는 '관계항' 연작을 비롯해 대표적인 단색화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등의 주요작을 소개한다. 특히 대형 설치작품 '관계항(Relatum)-The Mirror Road'는 베를린 국립회화관 대표작인 렘브란트의 '벨벳 베레모를 쓴 자화상'(1634)과 함께 설치돼 '관계항'을 이뤄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동양과 서양, 자연과 인위 등 이항대립의 경계와 틈새라는 주제에 끊임없이 천착해온 이우환의 예술정신을 조명하는 작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영국 페이스갤러리 뉴욕 전시에 걸린 1973년 작 'Work'. 페이스

11월 10일부터 12월 2일까지 뉴욕 페이스갤러리에서 고(故) 유영국 화백(1916~2002)의 첫 해외 개인전인 'Mountain Within'이 펼쳐진다. 세계 4대 화랑으로 꼽히는 페이스에 올해 전속작가로 합류한 그의 탁월한 추상미학을 미국에 선보이는 기회다. 유영국은 한국 미술사에 기념비적 역할을 했지만 해외에는 활동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유영국의 첫 뉴욕 개인전은 세계 미술계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1965~1995년 제작된 유영국의 주요 회화 17점을 선보이며 1960년대 활동을 집중 조명한다. 작가는 1960년대부터 자신의 화면 구성에 있어서 공간을 조성하는 방식을 탐구하며 기하학적인 동시에 자연적인 색채와 형태의 서정적이고 미묘한 조합을 이끌어냈다.

다음 세대 K아트를 대표할 중견 작가들도 해외를 활발하게 누비고 있다. 김수자는 훔볼트 포럼 베를린에서 지난 10월 25일부터 개막해 내년 2월까지 기획전 '(언)폴딩 보따리'를 연다. 예술의 경계를 넘어 이주와 이동의 개념을 탐구해온 작가는 작품 14점을 선보이며 특별히 제작된 신작들은 박물관 갤러리의 역사적인 물건들과 연계돼 대화를 자극하고 주제를 맥락화한다.

서도호는 시드니를 대표하는 미술관 MCA 오스트레일리아에서 11월 4일부터 개인전을 개막해 내년 2월까지 연다. 남반구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서도호의 개인전은 30여 년의 작업 여정을 아우르는 대규모 설치, 조각, 드로잉, 판화, 비디오 작품으로 구성됐다. 가정 용품인 문 손잡이, 플러그와 스위치, 전구부터 서울, 뉴욕, 런던 등 그가 일생 동안 거주해온 가정 공간과 스튜디오의 실물 크기 복제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강철로 된 군대의 '개 꼬리표'부터 천까지 다양한 재료로 실현된 이 친밀한 예술작품들은 걸어 다닐 수 있고, 통과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