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안에 칼 두 개 품은 '인간 유니콘'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1. 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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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포지션도 어려운 야구계서
투타 겸업으로 월드클래스 돼
팔꿈치 수술 알고도 홈런 두방
감독 "그는 멈출 생각이 없다"
"메이저리그 홈런 선두가 투수
오타니는 80억명 중의 한 명"
베테랑 기자의 '괴물' 분석서
23경기에 선발 등판해 약 130이닝을 던지고 삼진 156개를 잡은 2021년 시즌의 오타니 쇼헤이. AP Photo

야구 전문지식이 적더라도, 일본 선수에게 뭘 그리 호들갑 떠나 싶더라도, 지금 그의 이름만큼은 기억해둘 만하다. '오타니 쇼헤이'. 1994년생, 키 193㎝에 몸무게 102㎏. 그리스 신화나 순정만화 속 인물이 현실세계로 씩 웃으며 걸어 나온 듯한 훈남 외모에 성실하고 겸손한 성격까지 겸비했다. 그렇다. 오타니는 세계 스포츠 역사를 다시 쓰는, 지난 100년간 스포츠계에서 가장 문제적인 선수다.

몸값 '5억달러'(예상가)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타석에서 때린 공은 일본 도쿄돔 천장을 뚫고, 투수 마운드에선 시속 160㎞의 패스트볼로 삼진을 잡는 괴물이어서다. 상상 속의 존재, 오타니는 '인간 유니콘'이다. 한 포지션에만 인생을 베팅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야구계에서 투타겸업(동일 시즌에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함)으로 월드클래스가 됐다.

오타니 쇼헤이의 위대한 시즌 제프 플레처 지음, 문은실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1만9800원

신간 '오타니 쇼헤이의 위대한 시즌'이 출간됐다. 원제는 '쇼 타임(Sho Time)'. 'Sho'는 쇼헤이의 '쇼'를 뜻한다. 오타니를 그 어떤 언론인보다 많이 취재했던 한 베테랑 스포츠 기자의 '본격' 오타니 분석서다.

오타니의 아버지도 야구를 했다. 그의 부친은 미쓰비시 공장으로 출퇴근하며 실업팀에서 세미프로 야구선수로 뛰었다. 아버지는 오타니가 운동을 더 잘하게 하려고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하는 강압적 부모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야구에 대한 예우'를 가르쳤다. 한 가지 더 알려준 게 있다면 이거였다. '경기 때마다 전력을 다하기'.

오타니는 '야구소년'이 아니라 '야구를 위해 사는 아이'였다. 공은 오른손으로 쥐었는데, 배트는 왼손으로 잡았다(우투좌타). 사실 그도 처음엔 배트를 오른손으로 쥐었다. 그런데 하도 홈런을 많이 치다 보니 공이 자주 오른쪽 펜스를 넘겼는데, 하필 거기 강이 흘러서 매번 공을 잃어버렸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정말 '비용'이 문제가 될 정도였다. 소년은 타석에서 반대편 손으로 배트를 잡았는데, 이건 훗날 오타니의 엄청난 무기가 됐다.

고교 시절, 밥을 하루에 11공기 먹어치운 오타니는 체중을 20㎏ 불렸다. 하지만 오타니의 비밀은 단지 육체적 우월성에만 기인하지 않았다. 그는 고교 때 이미 '은퇴 계획'을 세울 만큼의 정신력을 갖고 있었다. 오타니를 선점하려 미국 메이저리그(MLB) 구단 30팀 중 27팀이 입찰했다. 첫 훈련 날, 오타니가 우아하게 걷어 올린 공은 필드 중앙에 꽂혔다. 현장 사람들은 전율했다. 최고 수준의 '파워 히터'에게만 그런 공이 허락됐기 때문이었다.

2021년 오타니가 공을 치는 모습. 그는 그해 46개의 홈런을 내뿜었다. Icon Sportswire via AP Images

LA 에인절스 스프링 트레이닝(봄 전지훈련) 첫날, 오타니에게도 시련은 왔다. 팀 동료의 커브볼에 헬멧이 벗겨지도록 휘둘렀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시즌이 개막하기도 전에 혹평이었다. '28타수 3안타. 형편없음'. 한 스카우터는 오타니를 고교 타자에 비유하며 "메이저리그는 타격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고 일갈했다. 선발투수로 나가선 2회에 7점을 빼앗겼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경기가 시작되자 오타니는 날아다녔다. 1회 말, 배트는 펜스를 넘겼다. 3점 홈런이었다. 메이저리거들은 선수의 '첫 홈런'인 경우 절대 축하해주지 않고 모른 척하는 익살스러운 전통이 있다고 한다. 더그아웃의 무표정한 동료들 장난에 미소로 답한 오타니는 다음 날 또 홈런을 쳤다. 마운드에선 7이닝 삼진 12개. 이건 '1세기 동안 아무도 본 적이 없던' 인류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삶이란 게 불행 없는 행복이 있던가. 이번엔 척골 측부인대 손상이었다. 일상엔 지장이 없어도 투수 피칭은 일상적 활동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타니의 경우 '셈법'이 달랐다. 투수로선 치료가 필요하지만 타자로선 선수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반대 손으로 치면 되니 말이다. 투수를 계속 하려면 팔꿈치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안 날, 오타니는 '타자'로서 홈런포 두 방을 쏘아 올렸다. 감독은 말했다. "그는 멈출 생각이 없다."

투타겸업은 일본어로 이도류(二刀流)라 한다. 검술에서 양손에 다른 길이의 검을 하나씩 들고 싸우는 유파란 뜻인데, 그런 점에서 오타니는 몸 안에 품은 칼(刀)이 두 개다. 15분 사이에 시속 161㎞ 공을 던지고, 시속 185㎞로 공을 쏘아 올리는 남자. 저자는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오타니는 '몇 명 중 한 명'이 아니라 80억명 중에 한 명이다."

한계를 초극하기 위해 오타니가 지나왔을 고투를 책에서 더듬다 보면 이미 신화가 된 그의 이름 앞에선 국적도 인종도 허물어진다. 외신에 따르면 오타니는 LA 다저스나 텍사스 레인저스행이 유력하다. 그가 쓰는 새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메이저리그가 오타니를 표현한 문장은 눈길을 끈다. "메이저리그 홈런 선두가… 투수다! 이 문장을 쓰면서도 여전히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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