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종이빨대 업체의 눈물···“생존 달렸는데, 환경부는 전화도 안 받더라”

박채연·이유진 기자 2023. 11. 1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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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일회용품 규제 정책 폐지를 발표한지 이틀이 지난 9일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종이빨대 제조업체 리앤비의 공장에서 종이빨대가 생산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9일 오후 경기 화성시 종이빨대 제조회사 리앤비의 창고엔 빨대 5000개가 들어있는 박스 1만4000여개가 빨간 물류용 팔레트마다 켜켜이 쌓여있었다. 1500평 부지에 들어서 있는 건물 세 채는 공장과 창고, 사무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날도 공장에선 한창 종이빨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공장 벽면에 ‘작업 전 안전 확인, 작업 후 정리정돈’ ‘우리의 목표는 1등 품질’ 등이 쓰여 있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기계 10대마다 마스크와 헤어캡을 착용한 직원 두세명이 짝을 이뤄 작업 중이었다. 레일 위로 빨대 완제품이 쉴 새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빨대가 하루 500만개에 이른다. 갓 나온 하얀 빨대를 손에 쥐자 온기가 느껴졌다.

2018년 설립한 리앤비는 독자 기술로 친환경 종이빨대를 생산해 주목받았다. 접착제를 사용하던 기존 공정에서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빨대를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최광현 리앤비 대표(63)는 “스타벅스의 요청으로 사업을 본격화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종이빨대 대부분이 중국산이었고, 국내 생산제품이 없었다. 친환경 정책 기조에 맞춰 산업군으로서 역할도 하고 환경보호에도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일해왔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9일 경기 화성시 종이빨대 제조업체 리앤비의 공장에서 최광현 대표이사가 기자에게 빨대 생산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환경부가 지난 7일 이미 예고한 일회용품 규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일회용품 관리정책을 전격적으로 내놓으면서 종이빨대 제조회사들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다. 계도기간 종료(23일)를 보름가량 앞두고 생산량을 늘려놨는데, 편의점과 커피전문점 등에서의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단속이 무기한 유예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뒤바뀐 정책에 최 대표는 “우리는 생존이 달린 문제”라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종이빨대 제조업체 대표 10여명은 오는 13일 환경부 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다.

최 대표는 “정부 발표 전까지는 창고 물량의 40~50%가 꾸준히 출하됐는데, 지금은 재고 7000만개 중 20%만 출하가 확정된 상태”라며 “계도기간이 끝나는 11월부터 고객이 3~5배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설비를 대거 늘렸는데 난감하다”고 했다. 리앤비는 최근 자동으로 생산량을 점검하는 전산화 장비 2대도 새로 들였다.

최 대표는 현재 상황을 ‘정책에 의한 피해’로 규정하며 “시장이나 천재지변에 의한 피해가 아니다. 정책에 의한 피해는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이빨대 수요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였다”며 “다 떠나 환경보호를 위해 했던 정책이지 않나. 탄소 중립과 탈 탄소 등을 정책 기조로 삼는 환경부가 갑자기 ‘오염부’가 되면 안 된다”고 했다.

최광현 리앤비 대표이사가 환경부 관계자와의 전화 통화 목록을 보여주고 있다. 최 대표 이사는 정책 폐지를 발표한 이후 환경부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9일 설명했다. 한수빈 기자

환경부 대응방식에도 분통을 터뜨렸다. 최 대표는 “환경부에 계속 문의를 했다. 일부 소상공인들이 규제에 불만 제기를 한다는데 어떻게 하냐고. 지난달 통화에서는 기조가 변할 것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11월2일부터는 전화를 받지 않더라. 오늘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했다. 최 대표가 꺼내든 스마트폰 화면엔 환경부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던 발신 내역이 줄지어 떠 있었다.

직원들은 ‘소상공인 부담 해소’라는 명분에 의문을 표했다. 직원 A씨는 “구멍가게도 이런 행정은 안 한다. 갑작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상식 밖의 일”이라며 “누구를 위해 소상공인을 기준 삼아 정책을 왔다갔다하는지 모르겠다. 소상공인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기준이 없는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이근수 관리과장(34)은 “종이빨대 선두주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해왔지만, 자꾸만 어긋나는 정책에 일할 명분이 줄었다. 영업을 하며 했던 말이 다 거짓말이 된 것 같고, 직원들 멘탈은 나갔다”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소상공인 피해가 어느 정도 될 것인지에 대한 데이터도 없더라”고 했다.

지난 9일 경기 화성시 종이빨대 제조업체 리앤비의 공장에서 한 직원이 완성된 종이빨대를 정리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리앤비는 스타벅스 등 대형 커피전문점에 종이빨대를 납품하고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이보다 작은 소규모 종이빨대 제조업체들은 ‘줄도산’ 위기에 놓였다.

우뭇가사리를 이용해 친환경 종이빨대를 만들어온 누리다온은 정부 발표 하루 만인 지난 8일 직원 11명 전원이 퇴사했다. 누리다온 대표 한모씨는 1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조금만 더 버티자고 말할 면목이 없었다”며 “3개월 유예라든지 기간이라도 밝혔으면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을 텐데 무기한이라고 하니 눈물을 머금게 됐다”고 했다.

누리다온은 일회용품 관리정책이 본래대로 시행될 것에 대비해 두 달 치 생산 물량을 미리 만들어뒀다. 그러나 이번 발표로 대형 프랜차이즈 거래처로부터 ‘발주 요청을 철회하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소규모 거래처 70% 이상이 거래를 중단을 요청해왔다고 했다. 한씨는 “지금 인터뷰하는 중에도 실시간 반품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면서 “재고를 비롯해 원자재와 설비 등 15억원 이상 들어갔는데 무용지물이 됐다”고 착잡함을 드러냈다.

한씨는 지난달 초 환경부로부터 들은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고 했다. 당시 한씨를 포함한 종이빨대 회사 대표 4명은 환경부를 찾아갔다. 혹시라도 유예기간이 연장될까 걱정돼서였다. 그는 “환경부가 유예기간은 예정대로 11월 말에 끝난다고 답해 다들 힘내서 지금까지 왔다”며 “발표 이후 ‘정부 정책 믿고 사업한 게 잘못’이라는 댓글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정책을 믿고 사업을 하는 건데, 어떻게 역행을 하나”라고 말했다.

한씨는 “종이빨대 시장은 이제 끝났다”고 했다. 그는 “주변 회사들도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직원들 출근하면 빨대 생산을 해야 하는데, 돈 들여서 쓰레기를 만들게 됐다”라고 했다. 쌓여있는 재고를 언급하는 한씨의 목이 메었다.

“처음엔 다 태워버릴까 했습니다. 근데 제 자식 같아서 그러지 못했어요. 늦둥이 이름이 ‘누리’라서 ‘누리빨대’로 이름을 지었거든요. 직원들이 빨대를 상자에 툭툭 던지기만 해도, 자식 같으니까 ‘우리가 만드는 건데 막 던지거나 하지 말자’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렇게 애지중지한 내 새끼들인데.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참 막막합니다.”

지난 9일 경기 화성시 종이빨대 제조업체 리앤비의 사무실에 환경부의 일회용품 규제 정책 시행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수빈 기자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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