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장이 누굽니까”…대기업·노동계 원하청 교섭 파장 ‘촉각’
원·하청 교섭 우려 쏟아져
주요 기업 소송에도 영향
실질 지배력·교섭의제 관건
노사, 대통령 거부권 주목
야당은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자를 사용자로 보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법이 시행될 경우 하청 근로자는 원청을 향해 근로조건에 관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원청이 사실상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결정해 왔다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당장 HD현대중공업,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현대제철, 한화오션이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들 기업은 원·하청 교섭 여부를 놓고 하청노조와 법적 분쟁을 겪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사건은 원·하청 교섭의 기준을 제시할 바로미터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는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단체교섭 청구 소송을 냈지만 1, 2심 모두 패소했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9월 이 사건과 관련된 법리에 대한 심층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CJ대한통운은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로 구성된 택배노조와 교섭해야 한다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2심에서는 대리점주들도 CJ대한통운 편에 서서 소송을 함께 하고 있다.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과 교섭할 경우 반대로 대리점의 단체교섭 권한이 박탈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고법은 이달 중순 항소심 2차 변론기일을 진행한다.
롯데글로벌로지스도 원·하청 교섭을 놓고 롯데슈퍼 화물기사들과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앞서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운수사 소속 화물기사들과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 1심 판결은 다음 달 중순에 나온다.
현대제철은 같은 쟁점으로 2건의 소송을 치르고 있다. 중노위는 지난해 3월과 12월에 각각 현대제철이 하청노조의 교섭 상대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도 지난해 12월 중노위로부터 같은 판단을 받아야 했다. 다만, 중노위는 단체교섭 의무만을 인정했다. 당시 노동조합법상 교섭 의무를 인정할 수는 있지만 단체협약은 하청업체와 하청노조가 체결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원·하청 교섭을 요구하는 하청노조들도 줄을 잇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이 경우 원청이 하청 근로자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에게 업무 지시를 했는지, 하청 근로자 임금을 사실상 원청이 결정했는지 등을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 사건에서는 원청과 하청인 운송사, 화물기사들로 구성된 차주회(노조 전신) 간 체결된 업무합의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업무합의서는 운송료, 유급휴무, 근무일, 근무시간 등의 근무조건을 규정하고 있었다. 화물기사들은 롯데글로벌로지스가 근로계약이나 다름 없는 업무합의서를 앞세워 근로조건을 좌우한 만큼 실질적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 사건 2심에서는 하청 근로자 임금을 원청이 좌우했는지를 놓고 노사가 맞붙었다. 도급계약을 통해 지급되는 공사대금으로 사실상 하청 근로자 인건비를 원청이 결정했다는 것이 지회 측 주장이다. 이 주장은 2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대법원 판단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교섭을 요구하는 의제별로 원청의 의무가 나뉠 수도 있다. 현대제철 사건에서는 산업안전 분야 의제에 한해서만 원·하청 교섭이 인정됐다. 개정법이 시행되고 원·하청 교섭에 관한 분쟁이 발생하면 실무현장에서는 교섭의제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는 셈이다.
중노위는 앞서 현대제철 판정을 통해 “원청은 하청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하청노조에 대해 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하청사업주와 중첩적으로 부분적인 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데 그친다”고 했다.
원·하청 교섭이 이뤄진다면 원청노조와 하청노조가 창구 단일화를 해야 하는지 정해진 기준이 없는 상태다. 개정안에도 이에 관한 규정이 없다. 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하청노조가 대표교섭노조가 된다면 상황은 더 꼬인다. 원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하청노조 손에 맡기게 될 수 있어서다.
중노위도 이를 의식했는지 현대제철 2차 사건을 통해 하청노조의 교섭 단위를 하청사업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중노위 판정만으로 창구 단일화에 관한 법적 공백을 채우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원·하청 교섭이 인정되면 불법파견 분쟁으로 불씨가 옮겨붙을 수 있다.
원·하청 교섭을 하게 되면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결정한다. 근로조건을 좌우하는 것은 파견관계를 인정하는 근거 중 하나다. 파견관계가 인정될 경우 원청은 파견기간이 2년을 넘긴 하청 근로자를 직고용해야 한다.
주요 산별노조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개정법을 공포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전날 입장을 내고 “국내 자동차 산업, 조선업, 건설업 등은 협력업체와의 수많은 협업체계로 구성돼 있다”며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해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를 붕괴시키고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상실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제6단체(한국경제인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경총·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오는 13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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