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 뒤집는 노란봉투법, 野도 文정부 땐 우려
대법 “가담 정도에 따라 손해배상 제한하면 안 돼”
헌법·민법에 따른 대법원 판례 무용지물 됐다
가해자 1인이 다른 가해자에 비해 불법행위에 가공한 정도가 경미하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그 가해자의 책임 범위를 손해배상액 일부로 제한하여 인정할 수는 없다.
2000년 9월 29일 대법원 선고 中
공동불법행위에 있어 가해자 간 책임 경중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2000년 9월 29일 대법원 선고는 그동안 파업을 비롯한 많은 불법행위 관련 손해배상 소송 판결에 인용돼 왔다. 헌법상 재산권과 고의·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배상책임이 있다는 민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9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을 단독 처리함에 따라 대법원 판례가 무용지물이 됐다. 뿐만 아니라 노란봉투법에는 헌법, 민법 등 기존 법체계와 배치되는 내용이 상당수 있다. 이에 야당이 앞장서 무분별한 불법 파업을 제한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법률로서 무력화 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법조계가 가장 문제적이라고 보는 부분은 불법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권리를 사실상 제한한 3조2항이다. 이 법은 법원이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려면 배상 의무자별 각각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하고 있다. 파업에 있어 주동자와 단순가담자, 방조자 등을 분류해 손해배상액을 다르게 판정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법원은 기업이 불법 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에 대해 다수의 파업 참여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손해배상액을 참여자가 나눠 내거나, 한 사람이 전부를 내거나 하도록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 누구에게라도 전액을 물어내라고 요구할 수 있는 ‘부진정연대책임’ 법리에 따른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민법 760조에 따른 것이다. 이 조 1항에는 수인(數人·여러 사람)이 공동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해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하고 있다. 2항에선 이중 누구의 행위가 그 손해를 가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때에도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하고 있다. 3항은 교사자와 방조자 역시 공동행위자로 본다고 돼 있다.
이 법리에 따라 대법원은 2000년 9월 ‘불법행위에 가담한 가해자의 책임 범위를 가담 정도에 따라 제한하지 않는다’고 판결한다. 당시 고객 예금을 빼돌리는 데 가담한 A씨가 은행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리자, 자신은 구체적인 범행 공모에 참여하진 않았다며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자 이렇게 판결한 것이다. 이후 대법원과 각급 법원은 이 판결을 불법공동행위 손해배상 소송 판결에 상당수 인용해왔다.
그런데 노란봉투법은 민법 760조에 따른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쟁의행위는 집단적 행위로 그 과정에서 조합원의 역할을 외부에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용자가 각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를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법원으로서는 청구를 기각할 수 밖에 없으므로 우회적으로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굉장히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 헌법 23조에 명시된 재산권을 정면으로 침해한다. 기업은 파업으로 인해 경영상 손실이 막대해도 개별 파업 참가자의 책임 정도를 파악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이상 소송 제기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헌법 27조 재판청구권을 침해할 여지도 있다. 불법 파업에 대한 법적 제동 장치가 사라져 노조법 38조에 명시된 ‘다른 근로자의 업무를 방해하는 쟁의행위 금지’가 무력화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런 법 자체의 맹점으로 인해 민주당도 전임 문재인 정권 때 관련 법안을 3건 발의하는 데 그쳤다. 이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7건을 일제히 발의했다. 노동계에서 꾸준히 노란봉투법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민주당이 여당일 때보다 야당이 됐을 때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고용노동부 인사도 노란봉투법의 위헌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2020년 1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박화진 당시 고용부 차관도 “거의 20년 전부터 이 문제를 저희도 고민을 해왔는데, 민법상의 손해배상 원칙이나 민사집행법, 신원보증법 문제까지 해당 법률의 원칙을 흔드는 특례조항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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