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대첩' 보며 즐기는 TMI, 실제 부마의 삶은?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퓨전사극의 묘미는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되 극적 상상력을 최대한 부려 넣고, 여기에 현대인의 정서를 녹여 공감을 높이는 것에 있다. 물론 사극이라는 틀 안에 있기에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선을 넘는 상상력은 괴리가 생기며 오히려 이질감을 들게 하기 때문. 조선시대 청상부마와 청상과부가 만나 원녀, 광부의 혼례 대작전을 펼치는 KBS월화드라마 '혼례대첩'은 전형적인 퓨전사극의 기틀을 따르지만, 사극이란 장르 안에서 귀엽고 코믹한 상상력을 잔뜩 부려 놓아 눈길을 끈다.
'혼례대첩'의 남주 심정우(로운)는 공주의 남편이자 임금의 사위인 부마(駙馬)다. 그러나 그는 부마를 원한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최연소 장원급제를 할 만큼 뛰어난 학식과 출중한 외모, 그리고 그에 걸맞은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으로 장차 영의정을 꿈꾸는 인물이기 때문. 그러나 그 출중한 외모가 효정공주(박채영)의 눈에 띄고, 동노당파 당수인 좌의정 조영배(이해영)의 이해타산이 곁들여지며 울며 겨자 먹기로 부마가 되고 만다. 공주의 남편인 부마는 종1품의 위(尉)에 봉해지지만 명예직 외엔 맡을 수 없어 출사를 꿈꾸는 심정우에겐 원하지 않는 자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혼례를 올리는 도중에 공주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쓰러지고 결국 사망, 첫날밤도 보내지 못하고 열일곱 살에 홀아비가 되었으니 그의 울분이 쌓이고 쌓일 만하다. 8년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혼인 무효 상소를 올리지만, 그것이 먹힐 리가 없다. 그런 와중 남녀가 가까이하는 모습만 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 통증을 느끼고, 그 여파인지 그의 날카로운 레이더에 걸린 사람들은 먼지처럼 탈탈 털어져 좌천되거나 옷을 벗기 일쑤이니 뭇 사람들이 심정우를 '한양 최고의 울분남'이라 할 만하다.
사실 심정우의 상황은 코믹하게 그려내 보는 이는 '웃프지만' 실상을 생각하면 무척 끔찍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부마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혼례대첩'에서 나온 대로, 부마는 명예직 외에 출세의 길로 나아갈 수 없었다. 물론 왕실과 사돈관계가 되니 집안의 명예이고, 공주나 옹주가 결혼할 때 가져오는 지참금도 상당하고 과전법에 따라 공주의 남편에게는 토지 250결, 옹주의 남편에게는 150결을 지급하는 등 부유하게 살 수 있었다. 선조의 딸 정명공주와 결혼한 영안위 홍주원은 기존 약혼까지 파하면서 공주와 결혼하며 일제강점기까지 분쟁이 이어진 여러 땅을 하사받았으며, 심지어 장모 소성대비(인목왕후)로부터 왕만 탈 수 있는 어구마까지 받기도 했다. 심정우의 경우처럼 본인은 벼슬하지 못해도 부모, 형제 등 일가친척들은 사돈집안이란 이유로 벼슬 등 여러 혜택을 받기도 했다.
한편 남편인 부마는 물론 공주나 옹주의 시부모도 며느리인 공주나 옹주에게 절을 받지 못하고 깍듯이 존댓말을 하며 '모시고' 살아야 했다. 사대부 남성들이 흔히 들이던 첩을 들일 수 없었고, 심지어 아내가 죽어도 후처를 맞이할 수 없었다. 효종의 딸 숙녕옹주와 결혼한 금평위 박필성은 옹주가 20세에 요절한 뒤로 무려 95세로 사망하기까지 혼자 살아야 했다. 순조의 딸들인 명온•복온•덕온공주는 모두 10대 후반~20대 초반에 요절했기에 그들의 남편들 또한 재혼하지 못하고 양자를 들여 대를 이어야 했다. 철종의 사위인 금릉위 박영효는 심정우와 가장 비교할 만하다. 박영효는 12세 때 철종의 무남독녀 영혜옹주와 결혼했으나 옹주가 3개월 만에 사망해 어린 나이에 홀아비가 되었다. 다만 이후 고종이 이를 딱하게 여겨 영혜옹주를 모시러 따라간 궁녀들을 첩으로 삼도록 허락해 서자, 서녀이지만 친자식을 보았다. '혼례대첩'에서 왕(조한철)은 세자의 가례를 위해 심정우에게 혼인 무효를 미끼로 임무를 내렸지만, 사실 혼인을 무효로 할 생각이 전혀 없다. 심정우가 임무를 성공한다 해도 그에게 허락될 수 있는 건 첩을 하사하거나 눈감아주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심정우처럼 홀아비가 된 부마가 재혼하지 못하는 정도는 그래도 양반이다. 왕실과 사돈을 맺는 것은 여차하면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비극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장 조선의 첫 왕인 이성계의 딸 경순공주와 결혼한 이제는 1차 왕자의 난에 휘말려 이방원(태종) 측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 등장해 대중에게 유명한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와 결혼한 영양위 정종은 단종 복위와 연루되어 거열형이라는 끔찍한 죽임을 당한 바 있다. 인조의 딸인 효명옹주와 결혼한 김세룡 역시 장모인 귀인 조씨의 저주 사건에 연루되어 국문당하고 거열형으로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이 아깝지 않아 보이는 간 큰(?) 부마도 존재했다. 중종의 딸 효정옹주와 결혼한 순원위 조의정은 첩을 둘 수 없음에도 여종 풍가이를 첩으로 삼고 옹주를 구박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옹주가 출산 이후 위독해졌음에도 이를 왕실에 늦게 알려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의심도 받아 직위를 박탈당하고 귀양에 처해진다.
사극에서 왕실 인물을 주인공으로 할 경우, 대체로 왕실의 정점인 임금이나 임금의 뒤를 이을 세자 및 왕자군, 혹은 그들과 로맨스로 엮일 수 있는 여인들에 포커스가 맞춰지곤 하기에 자연스레 공주의 남편인 부마는 사극에서 주변부 인물이곤 했다. 부마가 주요 인물로 등장했던 것도 '공주의 남자'와 '해를 품은 달' 정도일 뿐이다. '혼례대첩'은 코믹 멜로 드라마를 표방하는 퓨전사극이지만 두 작품에 이어 부마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퓨전인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심정우의 삶이 과부인 '여주댁' 정순덕(조이현)을 만나 행복해질 수 있길 바란다. 아마 과거의 부마들도 '혼례대첩'을 본다면 심정우의 행복한 삶을 응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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