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안전 내세워 자기들 배만 불리나”...시민도, 노조도 이해 못 하는 지하철 파업
서울교통공사 “채용인원 늘리겠다” 했으나
민노총 “정년퇴직자 채용” 요구해 협상 결렬
민노총 “수능 이후 전면파업” 으름장
“지하철 요금 오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파업을 한다니까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죠. 시민 안전을 위해 파업을 한다는 포스터가 열차 여기저기 붙어있던데, 파업하느라 좁은 열차에 시민들이 몰려 타는 게 안전한 건 아니잖아요.”
지난 9일 퇴근시간대인 오후 6시 30분쯤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서 만난 50대 여성 윤지민씨가 한 말이다. 이날 오후부터 남부터미널역 측은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개찰구를 한 곳만 열어놓고 그 옆에 역무원을 세워놨다. 역무원 통제에 따라 시민들은 30초에 한 명 꼴로 느리게 개찰구를 통과했다. 개찰구 뒤로 늘어선 인간 띠가 역 출구 계단까지 닿을 정도로 길어지자 한 시민은 천장을 보며 깊은 한숨을 뱉기도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 서울교통공사노조(제1노조)가 홀로 파업에 들어가면서 3호선 운행률이 평소의 57% 수준까지 떨어진 탓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에 남부터미널역 측이 승강장과 열차 내부에 사람이 지나치게 많이 모일 것을 우려해 개찰구를 하나만 열어둔 것이다. 남부터미널역에서 2호선 잠실역까지는 평소 30분도 걸리지 않지만 이날 퇴근시간대에는 1시간 넘게 걸렸다.
10일 민주노총이 이틀째 서울지하철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이 상당한 불편을 겪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8일 서울교통공사와 노사 합의가 결렬되자 9~10일 이틀간 ‘경고 파업’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사측이 시민 안전을 뒤로하고 구조조정을 진행하려는 걸 막겠다는 게 민주노총이 내세운 파업 명분이지만 시민은 물론 노조 내부에서도 이번 파업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전날 시민들은 이른 오후 시간대부터 큰 불편을 겪었다. 4호선 혜화역에서 동대문역 방향으로 가는 승강장은 평소 한산한 시간대인 오후 3시 30분부터 사람으로 가득찼다. 3호선 환승을 위해 충무로역에서 내렸으나 열차는 20분 가까이 오지 않았다. 이곳에서 만난 30대 남성 한 모씨는 “시민 안전을 명분으로 자신들 배만 불리려 파업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럴 거면 왜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파업은 시민들뿐만 아니라 노조들 사이에서도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한국노총은 민주노총과 함께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교섭에 나섰으나 결국 이번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교섭 당시 한국노총에서 4명, 민주노총에서 8명씩 교섭 위원이 들어갔는데 한국노총 쪽은 서울교통공사 측 제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나 민주노총이 거부하면서 교섭이 결렬되고 두 노조 사이 불협화음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우리 쪽 교섭 위원들이 민주노총 쪽과 회의하는 과정에서 설득을 많이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며 “교섭 과정에서 사측 제시안이 점점 진일보하는 걸 확인했고 이 정도면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선까지 왔으나 이를 민주노총이 거부해 상황이 아쉽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파업에서 가장 큰 쟁점은 인원 감축이다. 17조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 해결을 위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게 서울교통공사 입장이다. 이를 위해 서울교통공사는 비핵심 직렬에 근무 중인 인원을 자회사로 보내고 신규채용 규모를 줄이는 식으로 2026년까지 2212명을 감축할 계획이었다.
이에 노조가 반발하자 사측은 하반기 신규채용 규모를 388명에서 660명까지 늘리고, 특히 안전 업무 관련 인력은 철저히 충원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정년퇴직인원 276명까지 추가 채용해달라 요구했고 사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최종 협상이 결렬됐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5호선, 8호선이 내년에 대대적인 보수·계량 공사를 앞두고 있다”며 “충분히 납득 가능한 제시안을 사측이 내놓은 만큼 이를 빨리 수용해 인력을 충원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 제3노조인 올바른노조도 비슷한 맥락에서 민주노총에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다. 송시영 올바른노조 위원장은 “이번 파업 자체가 납득이 안 된다”며 “이 정도면 상당히 좋은 조건인데 도대체 왜 파업을 하는 거냐는 목소리가 직원들 사이에서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합리적인 제시안을 거부한 이유도, 파업을 통해 뭘 얻으려 하는 건지도 직원들 대부분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민주노총이 권력과 머릿수로 내부 의견을 찍어누르며 파업을 강행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교통공사노조 인원들 중 민주노총은 1만146명, 한국노총은 2742명, 올바른노조는 1915명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은 경고성 파업을 오늘까지만 진행하되, 사측이 자신들 제안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수능이 끝난 뒤부터 전면적인 파업에 나서겠다 으름장을 놓고 있다. 명순필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은 이날 “예고했던 1차 시한부 경고 파업은 오늘이 마지막이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오세훈 시장과 공사가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수능 이후 2차 전면 파업에 돌입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증시한담] 증권가가 전하는 후일담... “백종원 대표, 그래도 다르긴 합디다”
- ‘혁신 속 혁신’의 저주?… 中 폴더블폰 철수설 나오는 이유는
- [주간코인시황] 美 가상자산 패권 선점… 이더리움 기대되는 이유
- [당신의 생각은] 교통혼잡 1위 롯데월드타워 가는 길 ‘10차로→8차로’ 축소 논란
- 중국이 가져온 1.935㎏ 토양 샘플, 달의 비밀을 밝히다
- “GTX 못지 않은 효과”… 철도개통 수혜보는 구리·남양주
- 李 ‘대권가도’ 최대 위기… 434억 반환시 黨도 존립 기로
- 정부효율부 구인 나선 머스크 “주 80시간 근무에 무보수, 초고지능이어야”
- TSMC, 美 공장 ‘미국인 차별’로 고소 당해… 가동 전부터 파열음
- [절세의神] 판례 바뀌어 ‘경정청구’했더니… 양도세 1.6억 돌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