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더 센 놈이 나타났다”
2017년 개봉된 영화 ‘더 킹’은 권력을 좇는 검사들의 탐욕과 무자비한 음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검사들은 자신들에게, 혹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권력에 불리한 상황이 벌어지면, 세간의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새로운 이슈를 꺼내 든다. 검찰 캐비넷에 보관했던 것 중 연예인 스캔들 같은 단번에 대중의 관심을 돌릴 수 있는 이슈들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자신에게 불리한 국면이라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힘이 검찰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대사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진실마저도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상징한다.
그동안 현실에서도 이런 정황을 떠올리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연예인 마약 등 스캔들이 터지면, 으레 불리한 국면에 처한 정치권력을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온갖 정보가 제한 없이 쏟아지는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임에도 말이다. 실제로 최근 배우 이선균 등 일부 연예인의 마약 이슈에 대해 야권 일각에서는 은근히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SNS를 통해 이번 연예인 마약 스캔들이 ‘오비이락일까’ ‘우연의 일치일까’라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불신 사회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이슈는 서로 다투는 중심이 되는 점이다. ‘깻잎 논쟁’과 같이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슈는 바람직한 문화형성에 기여한다.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제기되고, 대중의 관심이 모이면 이슈가 된다. 자연히 사회적 논쟁이 일어난다. 이 논쟁은 민주정치의 핵심이다. 이슈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 유불리가 가려지기도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토론이 이뤄지면 결국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그러나 ‘이슈만 제기’되고 그 후의 과정은 생략되기 일쑤다. 이슈의 내용에 따라 한쪽은 유리하지만, 상대는 불리한 국면을 맞게 된다. 자기에게 유리한 이슈를 선점하려고 시도하는 이유다. 이는 이슈 선점으로 정치적 이익만 취하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인식 때문이다.
또한 이슈만을 위한 이슈 제기는 오히려 다양한 논의의 기회를 박탈하는 역설을 낳는다. 사회적 논의를 방해한다. 반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확신편향을 강화시킨다. 여론은 갈리고, 진영 간 화해할 수 없는 장벽만 높아진다. 특정 이슈를 통해 자신의 불리한 이슈를 덮었다면, 상대는 다시 다른 이슈를 들고 나온다. 다양한 논의 과정을 통해 해결과제를 만들기도 전에 그 이슈는 소멸된다. 정확히 말하면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진다. 더욱 강력한 이슈 생산이 필요해졌다. 자연히 이슈의 유통기한이 짧아진다. 동시에 이슈 선점에 대한 이익도 제한된다.
최근 김포시 서울 편입과 공매도 전격 중단은 여권의 노골적인 총선 전략이다. 스스로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 눈치다. 그만큼 총선에 불리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다. 여당 국회의원의 휴대폰에서 포착된 이슈 활용 의혹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론들도 이슈 선점 효과가 있다고 부추긴다. 야권에 대해서는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확인된 ‘반윤석열 정서’에만 기대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른바 ‘침대축구’를 하고 있다는 것. 슬쩍 야권의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하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야권도 반격에 나섰다. 여권발 김포, 공매도 중단에 대한 부작용 부각에 집중했지만, 새로운 이슈가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어찌 됐든 이번 이슈도 유통기한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슈는 계속 발굴될 것이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은 이슈의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선거전에 나서는 정치인 입장에서는 이슈 선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죽했으면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 빼고는 다 나와야 한다”고 하겠는가. 나아가 “신문 1면을 장악해야 한다”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이슈는 각 진영의 스피커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다. 보수든, 진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마찬가지다. 이렇게 강화된 진영논리는 새로운 이슈가 제기되더라도 진실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의지마저 무력화시킨다.
‘이슈를 이슈로 덮기 위한 이슈 제기’는 국민적 관심을 끌기보다는 국민적 피로감만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국민들은 어느새 이슈에도 눈을 돌리는 지경이 됐다. 그저 확신편향에 사로잡힌 일부에 의해 이슈는 소비되고 소멸되어 간다. 강화된 진영 논리는 이슈에 대한 진실 여부보다는 이것이 진영에 이익이 되는지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이슈에 둔감해진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더 자극적인 이슈가 필요하다. 그래서 외친다. “더 센 놈이 나타났다”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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