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딛고 27년째 봉사…‘홀몸 어르신들의 아들’ 이광덕 경위 [따만사]

김예슬 동아닷컴 기자 2023. 11. 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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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간 홀몸 어르신 찾아 건강 체크·말벗 봉사
근무 중 교통사고 이후에도 취약계층 돌봄과 위기가구 발굴 지속…
비번 때 후배들과 생필품 후원 등 선한 영향력 전파
이광덕 경위(50)가 홀몸 어르신과 일기장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아들, 항상 조심해. 밥은 먹었어?”

경기도 성남중원경찰서 대원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이광덕 경위(50)는 이 지역에서 어르신들에게 ‘경찰 아들’로 불린다.

이 경위는 일주일에 두세 번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해 안부를 묻는다. 그때마다 어르신들은 따뜻한 웃음과 함께 “뭐 줄까”라며 이 경위를 친자식처럼 맞이한다. 경찰 생활을 하며 27년간 선행을 해온 이 경위는 어르신들과 대화하는 것이 되레 힐링이라고 한다. 그는 “갈 때마다 친아들을 대하듯 반기고 이야기 보따리를 푸신다”라며 “밥 먹으러 오라고 연락 오는 어르신들도 많다”고 웃으며 말했다.

특히 지역 홀몸 어르신 4명은 정기적으로 찾아가 안부를 묻는다. 이 경위는 “잠깐 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어서 힘들지는 않다”라며 “도보 순찰을 하다 보면 어르신 집 방향이 겹칠 수밖에 없다. 그때 잠깐 찾아뵙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 이 경위는 보통 휴무일에 복지회관 어르신들을 찾아가기도 한다.

이 경위는 14년간 한 조손가정에 매달 기부를 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태에서 홀로 손주들을 키우는 할머니를 알게 된 후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이 경위는 “얼마 전 손주들이 취업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경위가 건강 상태를 점검하면서 안부를 물었던 어르신만 원래 50여 명이나 된다.

어르신들과 대화 나누며 오히려 힐링 받아…

그는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대부분은 자식들한테 손 벌리기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런 어르신들을 찾아내서 나라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어르신들을 이 경위가 찾아내서 사회복지사에게 전달한다. 이후 장애 등급을 받거나 국가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부분을 꼼꼼히 챙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한 번은 이 경위가 관리하는 어르신이 사망했다. 이 경위는 손자에게 시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장례 정보를 찾아 꼼꼼히 알려주기도 했다.

이 경위는 “내 일처럼 한 것 같다”면서도 “가족들이 잘 찾아오지 않아 외로움을 호소하시는 어르신들이 정말 많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제복 입은 경찰관이 다가가면 신뢰하기도 하고 속에 쌓였던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라고 했다.

27년째 홀몸 어르신 말벗 봉사· 건강체크 등 봉사활동을 해 온 이광덕 경위. 사진=본인 제공

이 경위는 지역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고 있다. 그는 “사실 어르신들과 대화하면서 오히려 내가 힐링하고 조언을 많이 받는 편이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자식에게 전화를 못 거는 어르신을 대신해 전화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자식들에게 전화를 하면 민폐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한 할머니는 자식이 연락이 잘되지 않아 아들의 안부를 몹시 궁금해했다.

그때 이 경위가 대신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다음 명절 때 아들이 꼭 오겠다는 답을 듣고 어르신에게 전달해드렸는데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고 말했다.

이같이 이 경위는 27년간 선행을 지속해 왔다. 그가 오랜 세월 동안 남을 위한 선행과 봉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우선 이 경위는 파출소에서 근무하다보니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럽게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만나게 됐다.

또 이 경위가 경찰 초임 시절인 1~2년 차에 한 선배가 지역에서 어렵게 홀로 사는 어르신을 돕는 모습을 보며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린 시절 사정이 어려워도 남을 돕는 일에 선뜻 나섰던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이장 활동을 하며 봉사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이 경위는 남을 돕는 일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얼마나 자주 어르신들을 찾아가느냐는 물음에 그는 “한창 많이 찾아갔을 때는 아내가 알면 혼날 정도다”라고 웃었다.

근무 중 당했던 교통사고 트라우마, 봉사활동으로 극복해…

남을 돕는 것에 행복을 느끼던 이 경위에게 갑자기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그는 2011년 교통사고 수습 현장에서 2차 사고를 낸 차량에 치여 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당시 그는 의사로부터 ‘다리를 사용 못할 수도 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 경위는 “며칠 전만 해도 달리기도 잘하고 운동이라면 1등도 자주하고 그런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며 “더 이상 운동이나 일조차도 못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안 좋은 생각도 너무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다시 다잡고 약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한 재활 치료를 시작했다. 이후 2014년 당당히 복직에 성공했다. 사고 이후 이 경위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지금도 가끔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아플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남을 돕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시선을 돌렸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기간에도 조손가정에 기부를 지속해서 이어갔다. 또 교통사고 합의금 5000만 원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했으며 동아일보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에서 받은 위민경찰관상 상금 1000만 원을 전부 기부하기도 했다. 사고 이후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이 경위는 오히려 남을 도우며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다.

홀몸 어르신에게 떡을 전달하는 이광덕 경위의 모습. 사진=본인 제공

그는 이틀 근무 후 이틀 휴식을 하는 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데, 이틀 휴식 중 하루는 지역 봉사활동을 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추석 때 후배들과 함께 복지회관에 다녀왔다. 이 경위는 “명절이 되면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더 외로움을 느낀다”라며 “고독사하는 어르신들이 많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확인하고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한편으로 후배들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주고 싶기도 하다고 전했다.

후배들과 경찰들에게 선한 영향력 전파하고파…

성남중원경찰서 경사모 봉사회가 상대원1동 복지회관에 생필품 등을 전달한 모습. 사진=성남중원경찰서

그래서 이 경위는 ‘경사모’(경찰을 사랑하는 모임)라는 모임을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경사모 봉사회에서 이 경위는 27년간 해왔던 어르신 돌봄과 같은 자신이 하고 있는 봉사를 후배들에게 그대로 전파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추석 때 사비를 모아 노인과 장애인 복지회관에 생필품 등을 추석 선물로 전달했다.

그는 “강제가 아니라고 강조했음에도 후배들이 봉사에 자발적으로 잘 따라줘서 고맙다”라며 “이런 모임을 통해 다른 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경사모 봉사회에는 이 경위와 이 경위의 후배인 송진성·이승운 경장 그리고 최일영·천정희 경사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어르신들 집에 방문해 건강 체크, 말벗 역할 등을 한다. 또 다른 단체들로부터 후원받은 물품들을 대신 전달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떡집에서 몇 박스를 후원받아 홀로 사는 어르신 집에 전달했다.

홀몸 어르신에게 떡 선물을 전달하는 이광덕 경위와 최일영 경사·송진성 경장. 사진=본인 제공

이 경위는 어린 시절부터 경찰이나 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처음에는 제복이 멋있어서 경찰을 꿈꿨지만, 의경 생활을 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경찰에 대한 꿈이 커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제복을 입음으로써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경기도 성남중원경찰서 대원파출소에서 근무 중인 이광덕 경위와 최일영 경사·송진성 경장의 모습. 사진= 김예슬 기자. 2023.10.24.

이 경위의 좌우명은 현실에 충실히 하는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이 경위는 자신의 가치관처럼 27년간 경찰 업무를 하며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이 경위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78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맹세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이광덕 경위가 지난달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78주년 경찰의날 기념식에서 맹세문을 낭독했다. 사진=본인 제공

그는 앞으로 어떤 경찰관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 “경찰에게도 인간적인 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기자에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살면서 인간적인 도리를 해야지 법만 중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법이 존재하기 이전에 사람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경위는 “인간적인 경찰관이 되고 싶고 또 신뢰감을 주는 그런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김예슬 동아닷컴 기자 seul5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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