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좀비도시 만들고 국내 고교생까지 집단 투약하다 걸린 그 마약

김수미 2023. 11. 1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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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등 좀비도시 만든 펜타닐
모르핀보다 진정효과 100배, 중독성도 높아
미 약물 과다복용 사망자의 80% 펜타닐 중독
국내도 고교생들 집단으로 복용하다 적발
병원 쇼핑으로 처방...‘홍대 펜타닐 살인사건’
지난해 한 TV 프로그램이 좀비처럼 기괴한 자세로 비틀거리는 마약중독자들로 가득 찬 미국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거리 모습을 방영했다. 유명 연예인의 마약 투약 소식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혁신과 다양성이라는 실리콘밸리의 가치를 대표하던 샌프란시스코도 마찬가지다.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에서 좀비처럼 기괴한 자세로 비틀거리며 배회하는 펜타닐 중독자의 모습. 유튜브 ‘크랩KLAB’ 캡처
이 도시들을 ‘좀비 도시’로 만든 것은 마약성 진통제이자 합성마약의 대표 물질인 ‘펜타닐’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0년 5월부터 2021년 4월까지 미국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10만명 중 80% 이상이 펜타닐 중독으로 사망했다.

펜타닐은 기존의 마약 대응 체계를 초토화할 수 있는, 천적 없는 포식자라 불린다. 국내에도 이미 침투해 2021년 5월 경남지역 고등학생 40여명이 펜타닐 패치를 불법 처방·투약하다가 적발됐다. 병원 쇼핑을 통해 펜타닐을 같이 투약하다가 살인에 이른 ‘홍대 펜타닐 살인사건’도 발생했다. 
신간 ‘대마약시대’(히포크라테스)는 미국이 전쟁을 선포한 펜타닐의 실체와 ‘마약 청정국’이란 수식어를 잃게 된 한국의 현주소, 미래를 짚었다.

책은 펜타닐이 창궐하게 된 과정을 따라가면서 아편, 모르핀, 헤로인과 같은 정통 마약부터 미국사회 경종을 울린 처방 마약까지 다양한 마약의 기원과 전파 과정, 폐해를 적나라게 보여준다. 

양귀비 열매에서 나온 아편에 빠져 청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지켜본 유럽 학자들은 아편의 중독성을 없애고 행복감만 남은 물질을 만들려고 했다.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를 양손에 들고 있는 데메테르 여신의 모습. 히포크라테스 제공
그렇게 아편에서 분리해 낸 것이 모르핀이다. 모르핀은 탁월한 진통 효과까지 갖고 있어 전쟁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이 맞았지만, 전쟁 후 중독자를 양산했다. 

이후 모르핀을 개선하기 위해 모르핀의 분자구조를 살짝 바꾼 마약성 진통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침약으로 개발된 헤로인이 대표적이다. 헤로인은 모르핀보다 두 배 정도 강력한 진정 효과를 갖고 있으며 뇌에 더 잘 흡수된다. 효과만큼 중독성도 강하다보니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무서운 속도로 번져나갔다. 2010년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아편류 시장 86조원 중 헤로인이 73조원을 차지한다.

1984년에는 모르핀을 알약으로 개발해 서서히 방출하도록 설계한 ‘서방정’이라는 형태의 약 옥시코딘도 개발됐다. 당초 모르핀보다 진통 효과가 두 배 강하고 중독성도 높아 임종을 앞둔 환자나 극심한 통증을 겪는 환자에게만 사용됐다. 그러나 차츰 일반적인 통증 치료제로 쓰이면서 우연히 옥시코딘에 중독된 환자들이 병원 쇼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코카인, 메스암페타민(필로폰), 헤로인 등의 전통적인 마약류는 불법적으로 길거리 마약상에게 구해야 했는데, 옥시코딘은 병원에서 합법적으로 처방받을 수 있고 심지어 보험처리까지 됐다.
불법으로 제조한 펜타닐 알약. 히포크라테스 제공
미국 정부가 옥시코딘 처방에 대한 규제를 시작하자 등장한 것이 펜타닐이다.

펜타닐은 당초 모르핀의 100배에 달하는 진통효과로 심장수술 전신마취제로만 사용됐으나 이후 수술 후 통증이 심한 환자나 출산시 무통주사 등으로 점차 영역을 확장했다. 제형도 주사에서 알약, 사탕형, 피부에 붙이는 패치제 등으로 다양해졌다.

병원에서 합법적으로 처방되고, 효과는 옥시코딘보다 강력하며, 사용법도 패치형으로 간단하니 중독자들이 선호할 수밖에. 내성이 강해진 펜타닐 중독자들은 패치형 펜타닐을 유기용매를 이용해 추출한 뒤 주사제로 맞거나 차로 우려내 먹었다. 심지어 패치를 씹어먹다가 사망한 사람도 여럿이다. 펜타닐은 2㎎ 먹어도 죽을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1년 국내 펜타닐 처방 건수는 148만여건으로 2018년 89만건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만큼 국내에서도 사용량이 크게 늘었다는 의미다. 
래퍼 윤병호(예명 불리 다 바스타드)씨가 2021년 KBS ‘시사직격’에 출연해 펜타닐 복용 후기를 털어놓는 모습. 그는 금단 현상으로 어금니 네개가 삭고 앞니 하나가 빠졌으며 수시로 극심한 오한과 공황 발작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KBS 캡처
래퍼 윤병호(예명 블리 다 바스타드)는 2021년 한 TV 프로그램에 펜타닐 복용 후기 털어놓으며 펜타닐을 최악의 마약으로 꼽았다.
그는 펜타닐 복용 후 구역질이 너무 심해 위산이 올라오고 어금니 네 개가 삭고 앞니 하나가 빠져 발음까지 어눌해졌다고 말했다. 금단 증상도 심해서 집 안 유리가 다 깨지고 온몸에 끓는 기름을 부은 것처럼 뜨겁다가 극심한 오한이 찾아올 뿐 아니라 수시로 공황 발작과 공격성도 생겼다고 밝혔다. 그는 마약류 투약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에 또다시 마약을 투약하다가 적발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중독자의 치아. 메스암페타민 중독자를 겉으로 알아보는 대표적인 증상은 피부와 치아 손상이다. 히포크라테스 제공
최근엔 미국 등을 중심으로 펜타닐에 다른 마약류를 섞는 합성 마약이 유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트 전 대통령이 합성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저자는 “마약을 공급하거나 투약하는 행위는 불법이지만, 중독은 질병이다”라고 말한다. 최근엔 마약류 중독을 ‘물질사용장애(Substance use disorder·SUD)’라고 부른다고 한다. 본인이 자초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대다수 젊은 나이에 저지른 실수로 평생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사회에 미치는 파장도 큰 만큼, 장애 즉 질병으로 보고 그들의 치료를 적극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중독자들만 탓하기엔 마약이 우리 삶에 너무 가까이 와 있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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