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수학자'가 감추고 있던 비밀스러운 감정…연극 '튜링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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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계산 기계 튜링머신을 고안해 인공지능 개념의 기틀을 제시한 인물이며, 나치 독일군의 암호 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한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지난 3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개막한 연극 '튜링머신'에서 주인공 튜링은 자신을 '말할 권리 없이 살아온 영웅'으로 칭한다.
늘 괴짜 취급을 받아온 튜링은 억눌렀던 감정을 표출하며 자신도 남들처럼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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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가상의 계산 기계 튜링머신을 고안해 인공지능 개념의 기틀을 제시한 인물이며, 나치 독일군의 암호 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한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튜링은 자신이 세운 업적에도 불구하고 비밀에 부쳐진 생애를 살았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에니그마를 해독했다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는 사실은 국가 기밀로 분류돼 1970년대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또한 동성애자였던 그는 동성애를 범죄로 취급하던 법으로 인해 약물 치료 처분을 받기도 했다.
지난 3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개막한 연극 '튜링머신'에서 주인공 튜링은 자신을 '말할 권리 없이 살아온 영웅'으로 칭한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며 경찰을 부른 그는 자신의 행적을 의심하는 조사관 미카엘 로스에게 그간 품어온 비밀을 하나둘 털어놓기 시작한다.
작품은 튜링이 경찰 조사를 받는 1952년과 과거를 오가며 결정적인 순간들을 조명한다. 연인 아놀드와의 사랑과 에니그마 해독 작전은 각각 튜링의 육체와 정신을 상징하는 두 가지 키워드로 활용된다.
늘 괴짜 취급을 받아온 튜링은 억눌렀던 감정을 표출하며 자신도 남들처럼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토로한다. 그는 아놀드와의 육체적 관계가 가져다주는 허탈함, 암호 해독이 실패를 거듭했을 때 밀려오는 좌절감을 비중 있게 들려준다.
튜링의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한 덕분에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도 몰입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좀처럼 흥분을 잃지 않던 튜링이 미카엘을 향해 자신이 인간인지 기계인지 따져 묻는 장면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또한 극이 진행되며 '인간다움의 조건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작품은 학문을 대하는 순수함과 사랑의 감정이 그를 인간이자 영웅으로 만들어줬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무대와 연출은 관객과 배우의 거리를 좁혀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느낌을 살렸다. 객석이 무대의 사면을 둘러싸도록 배치해 관객과 배우가 물리적으로 가깝게 위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배우는 관객에게 말을 건네거나 객석에 앉기도 하며 심리적 거리를 좁혔다.
다만 좌석 구조로 인해 일부 장면에서 배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거나 대사가 명확히 들리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튜링이 법정에서 애인 아놀드와 대면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놀드의 표정을 볼 수 없어 감정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다.
'튜링머신'은 프랑스의 작가이자 배우인 브누아 솔레스가 앨런 튜링의 전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2019년 프랑스 연극상인 몰리에르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국내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연극 '테베랜드', '더 웨일'의 연출가 신유청이 연출을 맡았다.
고상호가 튜링 역을 맡고, 이승주는 수사관 미카엘 로스와 튜링의 연인 아놀드 등 일인다역으로 출연하는 2인극이다.
공연은 오는 25일까지 계속된다.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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