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친 '서울의 봄'…올해의 앙상블, 올해의 서스펜스 [시네마 프리뷰]

정유진 기자 2023. 11. 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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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개봉 영화 '서울의 봄' 리뷰
'서울의 봄' 스틸 컷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호들갑을 떨고 싶진 않으나,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은 올해 꼭 봐야할 한국 영화 중 한 편이다. 역사가 스포일러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서스펜스로 휘몰아치는 이 영화는 배우들의 명연기 앙상블과 짜임새 있는 각본, 탁월한 완급조절의 연출력까지 삼박자를 갖춘 작품이다.

지난 9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된 '서울의 봄'은 12.12 군사 반란을 소재로 한 국내 첫 번째 극 영화다. 영화 속 등장하는 큰 사건들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만, 극중 인물들의 캐릭터와 구체적 행적 등은 영화의 주제에 맞게 상상력을 가미해 창작했다. 비슷한 시기를 다루고 있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이 한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서스펜스를 형성했다면, '서울의 봄'은 전투 신이 없음에도 전쟁 영화와 같은 심리적 긴장감으로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영화의 두 축을 이루는 인물은 전두광(황정민 분)과 이태신(정우성 분)이다. 전두광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제5공화국의 수장이며, 1979년 당시 10.26 사건의 수사 책임자이자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고, 이태신은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에게 맞섰던 수도경비사령관 소장 장태완에서 따 왔다.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민주주의 정권에 대한 기대감, 이른바 '서울의 봄'에 대한 희망이 피어오르지만 여기에 찬물을 부은 것이 신군부 세력의 군사 쿠데타다. '서울의 봄'은 이 군사 쿠데타의 과정을 쪼개고 쪼개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는 작품이다.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 정상호(이성민 분)가 삼고초려 하며 고지식한 이태신을 수경사령관에 임명한 것은 보안사령관이라는 지휘를 이용해 무고한 이들까지 잡아들이며 권력을 남용하는 전두광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전두광은 정상호가 자신과 자신을 주축으로 한 하나회 일원들을 한직으로 발령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자, 그를 끌어내릴 방안을 떠올린다. 10.26 당시 대통령의 서거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빌미로 정상호를 국군보안사령부로 연행해가려고 한 것.

그러나 계엄사령관인 정상호를 연행하는 일은 현 대통령(정동환 분)의 재가가 있어야 했고 전두광은 이 일을 속행하기 위해 이태신을 비롯한 수도권 방위 책임자 셋을 생일 잔치에 초대, 요정에 붙잡아 둔 채 재가를 받아내려 한다. 작전명 '생일 잔치'였다. 이 일에는 비밀리에 회동한 하나회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돼 있다. 하지만 일은 생각보다 쉽게 진행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쉽사리 재가를 내주지 않고,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이태신과 특전사령관 공수혁(정만식 분), 헌병감 김준엽(김성균 분)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하나회가 중심이 된 신군부 세력의 반란에 맞서기 위해 재빨리 움직인다.

'서울의 봄' 포스터

복잡한 이야기를 이태신과 전두광의 대립 구도로 단순화해 보여주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12.12 군사반란을 역사 책 속 사건으로만 기억하는 젊은 층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다가갈 수 있을 전략이다. 영화의 용병술은 화려하다. 충실하고 우직한 이태신을 연기한 정우성은 몸에 꼭 맞은 옷을 입은 듯 선한 눈매로 관객들의 몰입을 이끈다. 노련한 황정민은 유명한 실존인물을 연기함에도 캐릭터에 압도되지 않고 인물을 재창조 해냈다. 날카로운 육군참모총장 정상호를 연기한 이성민, 우유부단한 2인자 노태건을 연기한 박해준, 열정적인 헌병감을 연기한 김성균 뿐 아니라 유성주, 안내상, 안세호, 최볌모, 박훈, 김성오, 김의성, 정동환 등 이름을 알만한 수많은 배우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제 역할을 해냈다. 정만식과 정해인, 이준혁 등 특별출연 배우들의 존재감도 영화에 생기를 더한다.

연출의 완급조절도 탁월하다. 군사반란이 전개된 9시간 동안 진압군과 반란군의 상황은 엎치락뒤치락하며 보는 이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든다. 전쟁과도 같은 급박한 상황들의 연쇄 사이사이에 전두광과 노태건의 관계성, 이태신의 내적 갈등이 들어간 신들이 곳곳에 배치됐다. 이는 자칫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인물들에게 입체감을 부여하는 한편, 관객들로 하여금 감정적으로도 깊이 몰입할만한 시간을 준다.

'서울의 봄'의 손익분기점은 450만명에서 460만명대로 예측되고 있다. 한국 영화의 위기 상황 가운데 올 여름 영화 '밀수'가 어렵사리 해낸 기록을 또 한 번 해내야 한다. 상황만 본다면 전망이 밝지만은 않지만 희망을 걸어봄직 한 것은 영화의 만듦새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2시간21분 정도 되는 러닝 타임 동안 조금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 오는 22일 개봉.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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