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부터 해시태그까지… 검색시대 연 ‘색인’의 역사
데니스 덩컨 지음│배동근 옮김│아르테
색인 탄생시킨 건 ‘성구 사전’
구텐베르크 인쇄술 통해 확산
소설‘클러리사’엔 85쪽 달해
19세기 英선‘풍자 색인’유행
“구글링은 곧 구글 색인 검색”
발췌독서법 낳은 발명품이자
인터넷 시대 핵심기술 되기도
‘색인’(Index)의 재발견이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영문학 교수인 데니스 덩컨이 쓴 ‘인덱스’는 책 끝부분에 달린 하나의 부록 정도로만 여겨졌던 색인을 새롭게 조명한다. 그 결과 색인은, 인류의 지식을 언제든 접근 가능한 정보로 만들고 ‘발췌 독서’라는 새로운 독서법을 낳은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 할 만하다.
책은 색인의 시작부터 짚는다. 색인을 탄생시킨 것 중 하나는 성경이다. 12세기 전후 유럽 전역에서는 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가속화되고 대학이 융성하면서 대중을 상대로 한 설교와 강연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 권위 있는 문서를 인용해 설교와 토론을 하는 문화도 싹텄다. 책에서 인용하고 싶은 부분을 바로 꺼내보기 위한 도구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때 등장한 게 교리 관련 용어를 나열해 설명한 성경 성구 사전이다. 성구 사전의 성공과 더불어 색인은 주류로 편입하게 됐고, 여기에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되고 대량 인쇄가 등장하면서 크게 확산했다. 저자는 이때부터를 ‘색인의 시대’라 칭한다.
그러나 동시에 색인을 통한 ‘발췌 독서’에 대한 비판도 함께 생겨났다. 이는 지금까지도 일부 존재하는데, 원하는 부분만 홀랑 골라 읽어 진득하게 한 권의 책을 읽는 ‘제대로 된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비난이다.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뱀장어 같은 학문을 꼬리만 잡으려는 노릇”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식의 양이 방대하게 늘어나면서 색인은 필수가 됐고, 나아가 문학 작품에까지 그 범위를 넓혀나갔다. 소설에도 색인을 적은 것이다. 새뮤얼 리처드슨의 소설 ‘클러리사’(Clarissa·1753)는 여주인공이 한 난봉꾼에게 끝없이 고통을 겪으면서도 고결함을 지켜내는 내용으로, 마치 설교집처럼 독자들이 반복적으로 펼쳐보는 유의 책이다. 100만 단어에 조금 못 미치는 어마어마한 양의 이 소설은 색인도 85쪽에 달한다. ‘의무, 복종’ ‘지혜, 재능’처럼 서로 관련된 주제를 묶어 나열했다.
색인을 재미없고 지루한 참고 목록 정도로만 보면 곤란하다. ‘풍자 색인’(mock index)이 유행하던 때의 일화가 있다. 토리당과 휘그당으로 갈라져 있었던 19세기 영국 휘그당 정치인이자 역사가로, ‘영국사’(The History of England·1855)를 쓴 토머스 매콜리는 임종 직전 출판사 관계자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빌어먹을 토리당 녀석이라면 누구에게도 내 ‘영국사’ 색인 작업을 맡기지 마시오.” 색인 항목으로도 원본 텍스트를 조롱하거나 오류에 주목하도록 만들 수 있음을 의식한 말이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색인을 통해 풍자나 비방을 쏟아내는 한편 재치를 발휘하기도 했다. 1965년 뉴욕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윌리엄 버클리 주니어가 낸 책 ‘시장 선거 낙선기’(The Unmaking of a Mayor)의 색인에서 저자는 자신의 친구이자 사회참여 지식인으로서 경쟁자이기도 했던 노먼 메일러 항목 옆에 ‘안녕!’(Hi!)이라고 짓궂은 인사를 써놓았다. 메일러가 책을 받으면 뒤부터 펼쳐 본인에 관한 모든 색인을 찾아볼 것이라고 짐작하곤, 이러한 친구의 나르시시즘을 유쾌하게 꼬집은 것이다.
색인의 역사를 훑으며 옛이야기들을 펼쳐놓는 책이기에 현재의 우리, 특히 책을 잘 읽지 않는 이들에겐 색인 이야기가 멀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의외로 색인은 지금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그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구글링과 해시태그가 그 예다. 색인은 온라인 독서의 기반이 되는 핵심 기술이다. 구글의 총괄 엔지니어 맷 커츠는 “우리가 구글 검색을 한다는 것은 실제로 웹 검색을 한다는 말이 아니라 웹에서 구글의 색인을 검색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이제는 SNS 생활의 기본이 된 해시태그로, 우리는 날마다 색인을 직접 만들며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색인의 시대’는 오히려 지금이다. 488쪽, 3만5000원.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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