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마약 대응체계 초토화시킬 포식자… “펜타닐을 막아라”[북리뷰]

유승목 기자 2023. 11.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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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륙을 초토화하는 질병을 유행병(epidemic)이라 부른다.

연필심 위에 올릴 수 있는 2㎎만으로도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펜타닐을 진정제 계열 '끝판왕'이자 마약계의 우두머리로 지목한 저자는 "펜타닐은 우리나라 마약 생태계에서 외래종으로 기존의 마약 대응 체계를 초토화할 수 있는 천적 없는 포식자"라며 "그러므로 일찍 막아야 한다. 더 퍼지기 전에"라고 경각심을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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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약시대
백승만 지음│히포크라테스

한 대륙을 초토화하는 질병을 유행병(epidemic)이라 부른다. 이 질병이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면, 그때부턴 전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는 팬데믹(pandemic)이 된다. 코로나19를 벗어나나 했더니 새로운 질병이 전 세계를 덮치기 시작했다. 마스크도, 백신도, 방역도 무용지물이고 심지어 마땅한 치료제도 없는 터라 코로나19보다 더 무섭다. 전 세계적으로 범람하는 마약 얘기다.

마약과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매일 220명이 마약의 영향으로 목숨을 잃는다. 문제는 마약이 미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도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다. ‘마약 청정국’이라며 한동안 마약은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했던 한국 사회가 지금은 마약 문제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연예인·유명인사의 마약 복용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매스컴에 올라오고, 마약류 사범만 지난 한 해 1만8000명이 넘을 정도다. ‘마약 청정국’에서 ‘대마약시대’가 시작한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마약은 메스암페타민 같은 각성제나 대마에서 유래한 마약류다. 그런데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 있는 과학자로 저서 ‘분자 조각가들’로 유명한 저자는 아직 그 위험성이 크게 와닿지 않는 펜타닐에 주목한다. 단속부터 재활까지 경험이라는 백신이 정작 펜타닐에는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필심 위에 올릴 수 있는 2㎎만으로도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펜타닐을 진정제 계열 ‘끝판왕’이자 마약계의 우두머리로 지목한 저자는 “펜타닐은 우리나라 마약 생태계에서 외래종으로 기존의 마약 대응 체계를 초토화할 수 있는 천적 없는 포식자”라며 “그러므로 일찍 막아야 한다. 더 퍼지기 전에”라고 경각심을 불어넣는다. 마약이 사회 곳곳에 침투하기 시작한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의미다.

책은 펜타닐을 낱낱이 파헤친다. 펜타닐을 발명한 폴 얀센의 이야기부터 약의 탄생을 가능케 했던 모르핀 등 아편유사제의 역사까지 되짚는다. 1960년대에 만들어져 수십 년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펜타닐이 최근 들어 마약 팬데믹을 일으키게 된 역사적 맥락과 펜타닐에 중독됐을 때 사회가 분담해야 할 고통, 그리고 아편과 헤로인 등 그간 마약과 대결해온 인류의 기나긴 싸움의 과정도 생생하게 들려준다.

펜타닐 자체에 대한 혐오를 지양하고 개개인이 시도할 수 있는 과학적 대처 방안과 사회제도적 해법을 제시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펜타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지금도 펜타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사람을 살리는 약을 마약으로 변하게 한 인간의 ‘욕망’에 주목한다.

독성 없는 진통제를 꿈꾸며 펜타닐을 만들어낸 현대 연금술사들의 오판과 고통을 견뎌 얻은 행복과 값싼 쾌락을 구분하지 못하는 중독자는 태양을 향해 날아가다 추락한 이카로스와 다르지 않다는 책은 대마약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교양서라 할 만하다. 296쪽, 1만8000원.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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