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바쁜 당신… 휴식도 알차게 보내려는 강박부터 깨라[북리뷰]
테레사 뷔커 지음│김현정 옮김│원더박스
일에 저당잡혀 쫓기는 현대인
과로·저출산 등도 ‘시간 문제’
시간에 대한 압박감 없애려면
부족한 게 무엇인가 돌아보고
새로운 ‘시간문화’ 세워 지켜야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고, 저축도 투자도 되지 않고, 흐른다. 그리고 현대인은 늘 시간이 없다. ‘시간 부족’에 시달린다. 이 부족감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더 일찍 일어나 볼까. TV 시청도 줄이고, 식사 시간도 단축해 본다. 그런데 왜? 무엇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시간이 부족한 것일까. 시간을 아껴서 시간이 생겨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책은 그 ‘무엇’이 뭔지도 모른 채 현대인들이 마냥 시간에 쫓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시간 부족’이라는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위해 시간이 가진 속성, 즉 인간의 모든 활동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며, 나의 시간은 타인의 시간과 연결된 ‘상호적인 것’이라는 특성에 주목한다. 책은 이러한 ‘시간’을 화두 삼아 질문을 던지는데, 예컨대 기술은 발전하는데 왜 우리는 더 많이 일하는지, 돌봄 노동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이 정당한지, 왜 사람들은 자유 시간마저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을 갖는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은 가능한지 등이다. 한마디로 책은 양극화, 과로, 저출생, 기후 위기 등 현대 사회의 산적한 문제가 모두 ‘시간 문제’로 수렴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노동, 돌봄, 자유, 미래, 정치라는 다섯 영역에 걸쳐 날카롭게 분석하는데, 그 과정은 시간에 관한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완전히 다시 생각하도록 이끈다. 즉 책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시간 문화의 창조다.
책은 독일 역사와 독일 사례를 토대로 쓰였다. 이미 100년 전 사회개혁가 에른스트 아베가 ‘8시간 수면, 8시간 노동, 8시간 자유’를 주장한 사회다. 현재 한국에서의 일과 시간에 관한 논의는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한 듯 보이는데, 독일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주장은 훨씬 급진적이다. 복지 국가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을 점진적으로 좋게 하는 것에 있다면 거기엔 반드시 시간에 대한 압박, 시간 부족을 없애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인의 ‘시간 부족’의 근원에 현대 자본주의가 있다고 본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시간의 주도권을 일에 저당 잡히고, ‘바쁨’을 가치로 여기며 더욱 분주히 살아간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한 저자의 제안은 이렇다. 8시간의 수면 시간을 제외한 16시간을 각각 유급 노동, 돌봄, 문화 활동, 정치 활동에 4시간씩 할당해야 한다는 프리가 하우크의 ‘4 IN 1 모델’,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일종의 안식년처럼 활용할 수 있는 9년의 선택적 시간 제공 등이다. 국내에서도 한때 논의된 주 4일 노동보다 더 앞선 저자의 주장은 허무맹랑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질문을 곱씹어 보자. 우리가 늘 부족하다 느껴지던 시간이 채워진다면 과연 어떤 것에 우리는 ‘시간을 들이고’ 싶은가. 아마도 ‘일’은 아닐 터, 그것은 독서, 운동, 애인과의 근사한 저녁 식사, 아이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놀이 등일 것이다. 바빠서 미뤄둔, 떠넘겼던, 아쉬웠던, 그런 일들 말이다. 책은 우리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제대로 인식하는 것에서 엉켜 버린 ‘시간’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한다고 강조한다.
‘시간 부족’의 원인을 찾고,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선 선행 과제가 필요하다. 앞서 에른스트 아베와 프리가 하우크의 시간 모델처럼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하고, 일과 정체성을 떼어 놓고 보아야 하며, 빈곤과 건강, 비정규직 등 노동시간을 결정짓는 ‘일’을 둘러싼 무수한 논의도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책은 ‘노동시간’에서 출발해 시간 빈곤을 막기 위해 ‘돌봄’이 왜 노동으로서 정의되어야 하는지, 돌봄이 경시되면서 불거지는 청소년과 어린이 문제, 이들이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정치 행위 참여자의 부족 등 서로 원인이자 결과로 존재하는 다섯 영역을 두루 살핀다.
우리 삶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저자의 논지 전개에 책장을 넘길수록 기대를 잔뜩 품게 되지만 그 끝에 선택한, 궁극의 제언이 ‘유토피아’적 상상력에 기댄다는 건 아쉽다. “시간 정의를 실현하는 건 지난한 정치적 싸움이 될 것이다”라는 말과 새로운 시간 정책을 위해 취약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무언가를 꼭 성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던가,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각본 없는 삶의 잠재력”을 믿어보라는 말에 귀 기울이기엔, 이미 우린 너무 멀리 오지 않았나. 다만, ‘순진한’ 조언에 허탈해할 무렵 등장하는 다음 문장에 오히려 마음이 움직인다. “시간은 우리의 것”이고 “우리의 시간이 우리의 삶이 된다”는 그것. 그렇기 때문에 “시간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가치 있고 필요한 일”이 된다. 400쪽, 2만 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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