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음악·압도적 스케일·땀 냄새 나는 군무…갓! '벤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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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분간 무대 위에서는 단 한 순간의 느슨함도 허락되지 않았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더욱 탄탄하게 만드는 완성도 높은 음악, 지루할 새 없는 짜임새 있는 연출, 시종일관 감탄이 터지게 하는 웅장한 스케일의 무대 장치, 혼을 쏙 빼놓는 군무까지 빈틈을 찾아보기 어려운 뮤지컬 '벤허'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고 가족의 생사까지도 알 수 없는 굴곡진 삶을 경험한 벤허는 복수에 나서고 메셀라와의 결투에서 끝내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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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넘버·군무 빈틈없는 '수작'
전차 경주 장면서 움직이는 말 모형 8마리
완벽한 강약 조절에 탄탄한 완성도
150분간 무대 위에서는 단 한 순간의 느슨함도 허락되지 않았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더욱 탄탄하게 만드는 완성도 높은 음악, 지루할 새 없는 짜임새 있는 연출, 시종일관 감탄이 터지게 하는 웅장한 스케일의 무대 장치, 혼을 쏙 빼놓는 군무까지 빈틈을 찾아보기 어려운 뮤지컬 '벤허'다.
루 윌리스가 1880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벤허'는 유다 벤허라는 남성의 삶을 통해 고난과 역경, 사랑과 헌신 등의 숭고한 가치를 입체적으로 전한다.
배경은 서기 21년, 제정 로마 시기의 박해를 받던 예루살렘이다. 유대의 귀족인 벤허는 어릴 적 친구였던 로마 장교 메셀라의 모함으로 반역죄 누명을 쓰고 노예가 된다.
비극은 벤허의 여동생 티르자가 유대 총독이었던 발레리우스 그라투스가 승전하고 돌아오는 행군을 구경하다 기왓장을 떨어뜨리는 사고를 내면서 시작된다. 벤허는 유대의 폭도 소탕을 도와달라는 메셀라의 부탁을 거절했던 상황. 메셀라는 티르자의 실수를 문제 삼아 벤허 가문 전체에 반역죄를 씌운다. 그 길로 벤허는 노를 젓는 노예가 되어 로마 군함에 오른다.
3년 후 군함이 해적과의 전투 중 난파된 가운데 벤허가 사령관 퀸터스의 목숨을 구하면서 그는 로마의 귀족이 된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고 가족의 생사까지도 알 수 없는 굴곡진 삶을 경험한 벤허는 복수에 나서고 메셀라와의 결투에서 끝내 승리한다.
하지만 이미 평화가 파괴된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한센병에 걸린 어머니와 누이는 무한한 희생과 헌신을 한다. 극은 벤허의 증오심이 절정에 달했을 때 만난 예수가 "용서하라"는 말을 하면서 결말에 다다른다. 벤허는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를 보며 오열하지만 그 끝에 비로소 진정 낮은 곳을 볼 줄 아는 영웅이 되어 있다. 종교적인 메시지를 기반으로 하나 단순히 용서와 구원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긴 여운을 남기는 '벤허'다.
연출과 음악의 힘이 종교적 색채에 매몰되지 않고 작품 자체의 매력을 살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1막에서는 벤허가 노예가 되고 이후 복수에 나서기까지의 과정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무대 규모는 청각과 함께 시각을 동시에 압도한다. 해적을 만나 군함이 침몰하거나 로마군이 깃발·맨몸 군무를 펼치는 강렬하고 거친 장면이 이어져 숨을 죽이고 보게 된다.
벤허와 메셀라의 전차 경주 장면은 절대 놓쳐선 안 될 명장면이다. 회전 무대 위에 관절이 굽어졌다 펴지는 실제 크기의 말 모형 8마리가 설치된 가운데 박진감 넘치는 음악과 사실감 넘치는 연기가 더해져 마치 로마 시대 전차경기장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로 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단 작품이 '강하고 세기만 할 것"이라고 짐작한다면 오산이다. '벤허' 연출의 백미는 강약을 오가며 관객들의 마음을 쉼 없이 쥐락펴락한다는 것이다. 지하 묘지인 카타콤은 풍파가 몰아치는 외부 세계와 차단된, 위로와 평안을 주는 장소로 완벽하게 구현했다. 그 안에서 서로를 보듬는 벤허와 에스더의 듀엣을 비롯해 복수를 다짐하는 벤허의 독창, 한센병에 걸린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가 과거를 떠올리며 부르는 넘버까지 가슴을 쿡쿡 찌르는 장면들이 수시로 심금을 울린다.
'좋은 넘버'는 '벤허'의 최고 강점이다. '프랑켄슈타인'으로 왕용범 연출과 완벽한 호흡을 선보였던 이성준 음악감독의 감성과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서사에 잘 맞다 못해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마성의 넘버들이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높은 수준을 증명하는 왕 연출·이 음악감독의 수작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커튼콜까지 방심할 수 없다. 마치 복습하듯 주요 넘버를 다시 한번 불러주는 그야말로 풍족한 커튼콜이다.
이번에 새로 합류한 규현은 놀라울 정도의 맞춤 연기를 선보인다. 감정 소모가 큰 역할인 유다 벤허를 마지막까지 집중력 있게 연기한다. 노래도 미성을 지녔음에도 단단한 발성으로 고음까지 깔끔하게 소화해낸다. 2017년 초연부터 이번 세 번째 시즌까지 내리 참여하고 있는 박민성은 역시나 '믿고 보는' 메셀라로서의 존재감을 발산한다.
공연은 오는 19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LG 시그니처홀에서 계속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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