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출산과 정착은 어떤 의미일까…‘나의 피투성이 연인’

김은형 2023. 11. 10. 08: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20대의 고민과 어떻게 버틸 것인가라는 30대의 고민은 역시나 체급이 다른 것일까.

대구를 벗어나 서울로 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만 갈팡질팡하고 깨지는 20대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수성못'(2018)의 유지영 감독이 이번에는 출산과 정착이라는 30대의 고민을 그린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들고 돌아왔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출생]‘수성못’ 유지영 감독 작품
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디오시네마 제공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20대의 고민과 어떻게 버틸 것인가라는 30대의 고민은 역시나 체급이 다른 것일까. 대구를 벗어나 서울로 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만 갈팡질팡하고 깨지는 20대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수성못’(2018)의 유지영 감독이 이번에는 출산과 정착이라는 30대의 고민을 그린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들고 돌아왔다. 전작의 경쾌함은 사라지고 섬뜩할 만큼 무겁고 독하게 30대 커플의 갈등과 좌절을 밀어붙인다. 7일 오전 서울 홍대 앞 카페에서 유지영 감독을 만났다.

“영화를 만들 당시 30대 중반이 되어가면서 한 사람과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어요. 결혼하고 아이가 생겨도 영화를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발목을 잡았죠. 선배 여성 감독 가운데 아이 낳고 꾸준히 작업하는 분보다는 영화판에서 사라진 분들이 훨씬 더 많았으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일과 균형을 맞춘다는 게 너무 힘들었고 죄책감도 들었죠. ‘수성못’이 나의 20대를 돌아보며 만든 영화라면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30대의 고민을 매듭짓는 마음으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

오랜 연인 건우(이한주)와 함께 사는 재이(한해인)는 첫 책이 호평받으며 이제 막 도약하려는 작가다. 동네 영어학원 강사인 건우는 성실함을 인정받아 원장(오만석)으로부터 분원의 원장을 맡으라는 제안을 받는다. 각자의 삶에 변화가 올 때 둘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만든 유지영 감독. 디오시네마 제공

평범한 드라마라면 부랴부랴 결혼 날짜를 잡고 출산 준비에 들어가는 이야기가 이어질 터. 건우 역시 아이 없이 살자던 둘의 약속을 깨고 임신중지를 하겠다는 재이를 설득하며 “내가 다 알아서 할게”라는 약속으로 출산을 결정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달라지는 시선과 몸의 변화를 겪으며 지지부진한 차기작 집필로 재이는 점점 수렁에 빠지는 기분을 느낀다.

유지영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을 고 정미경 작가의 소설집에서 따왔다. 그는 소설보다 정미경 작가가 2017년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남편 김병종 화가가 같은 제목으로 쓴 추모의 글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아내로, 엄마로, 작가로 치열하게 살아온 정 작가님에 대한 글에 충격을 받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벽에 붙여놓고 글이 안 풀릴 때마다 읽고는 했는데 나는 그렇게는 못 살겠구나, 이 모든 걸 못해내는 것 또한 내가 이 시기에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됐죠.“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저출생을 한탄만 하는 이 사회에서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물론 그 목소리가 기성세대에게는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영화는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는 당사자의 속내를 포장이나 변명 없이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유 감독은 “아이를 낳더라도 ‘경단녀’가 되지 않고 창작이든 어떤 직업이든 무리 없이 이어갈 수 있으면 이런 영화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산을 앞둔 여성뿐 아니라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자리 잡으려고 발버둥 치는 남성인 건우를 통해 요즘의 저출생 담론에서 빠진 게 무엇인지 되새김질한다.

“아빠도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을 줄일 수 있고 언제라도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다면 건우가 이렇게까지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지 않았을 거예요. 건우도 재이도 이 상태로 아이를 낳으면 끝이다. 이런 불안이 있었고, 이런 개인의 억압은 사회의 억압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디오시네마 제공

세대나 처지에 따라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릴 작품이라는 평에 대해 유 감독은 “남녀 간의 로맨스로 봐도 좋고 페미니즘 논쟁의 화두가 되어도 좋다. 다만 평범한 삶 아래 자신이 진짜 욕망하는 게 무엇인지 그 바닥을 응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15일 개봉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