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 '작은 마을'로 갑니다…무너지는 시간들이 있었음에도
4년 만에 발매한 정규 2집 호평
11일 오후 7시 홍대 벨로주 쇼케이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이설아라는 이름 안엔 정경이 있다.
'작은 마을'에 눈송이가 내리는 풍경이 그려진다. 한기가 느껴진다. 그런데 마냥 춥지 않다. 서늘한 기운이 예민한 감각을 열어 젖히고, 이를 온전히 받아들인 이설아라는 싱어송라이터는 섬세함으로 그걸 토해낸다.
이설아는 열병을 앓으며 쓴 자신의 아픈 사연에 공감하는 청자로 인해 더 아파한다. 자신의 곡절(曲節)이 타인에게 그대로 흘러들어가는 곡절(曲折)이 될 때 그녀는 더 멈칫한다. 서로 삶의 모서리를 갉아먹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설아가 최근 발매한 정규 2집 '작은 마을'은 그 반질반질해진 모서리를 기꺼워한다. 조금은 둥그렇게 살아가도 된다는 안심의 미학. 그건 용기로 번지고 그 작은 용맹함은 스스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담대함을 뿌리로 삼고 있다.
최다은 SBS 라디오 PD는 '작은 마을' 라이너 노트에 "'작은 마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세계다. 절망과 붕괴, 이별의 아픔이 지배하는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세계"라고 썼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유토피아는 거창한 모습을 하고 있진 않다. 그러나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가 만들어 놓은 오솔길을 따라 차근차근 걷다 보면 어느새 나도 이 마을의 구성원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최 PD 말처럼 이설아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어깨에 눈송이가 쌓인 느낌이다. 그건 차곡차곡 쌓인 위로의 손길이다. '제 24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금상 수상자인 이설아는 이렇게 귀한 싱어송라이터 계보를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나가고 있다. 11일 오후 7시 홍대 벨로주에서 열리는 '작은 마을' 쇼케이스는 그녀의 세계관을 오롯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가능태와 현실태가 만나는 상상의 현실 공간. 다음은 최근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 주변에서 이설아와 만나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설아가 살아가며 작업하는 공간인데 고즈넉하면서도 단단한, 소란스럽지 않으면서 정겨운 풍경이 그녀의 음악과 닮아 있었다.
-이번 앨범에 대한 입소문이 점차 나고 있습니다. 좋다는 반응을 들으시죠?
"1집 '못다한 말들'(2019) 때보다는 반응이 많은 거 같아요. 이렇게 인터뷰 요청도 들어 오고 하는 걸 보면 그래도 '좋게 닿을 수 있는 지점들이 있었나 보다'라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이번 앨범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작업한 것들이 실렸나요?
"1집을 낸 지 4년이 됐는데요. 그 안에 작업한 곡들이 대부분이고요. 본격적인 작업 착수는 약 2년 전부터였는데 곡은 많이 썼으나 그것을 모으고 탈락시키는 과정이 되게 오래 걸렸던 것 같습니다."
-오래 걸렸던 이유가 있나요?
"작곡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때그때 심상이 반영이 되잖아요. 그런데 일정 시간이 지나고 곡을 다시 바라봤을 때 다르게 느껴지기도 해요. 제 목표는 '2집을 만들어보자'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앨범의 어떤 심상에 딱 들어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아끼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탈락시켰어요. 그 과정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최다은 PD님이 라이너 노트에 쓰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이 이번 앨범에 정말 잘 들어맞는 거 같아요. 사실 설아 씨 음악이 마냥 밝은 음악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번엔 절망만 얘기하지 않고 희망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 함축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절망과 희망의 중간 지점이 있다면 제 음악은 절망 쪽에 가까운 것 같기는 하거든요. 특히 이전에 냈던 음반이 더욱더 절망 편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와 그런 소리를 띠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2집을 만들면서는 그것들을 완전히 다 씻어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떤 꿈을 꾸는 일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메시지들을 담으려고 노력했고요. 예전에는 제 노래를 많은 사람들한테 들려주려는 고민을 깊게 하지 않았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되게 개인적인 작업에 가까웠죠. 어쩌면 너무 이기적으로 음악을 만들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러니까 저를 위한 것들이 많았던 거죠. 이번엔 제가 많은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너무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그런 지점들도 고려를 했죠. 또 절망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게 됐으니 그런 나의 마음과 시간들이 어떤 이에게 또 다른 희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전 저의 아픔이나 슬픔들은 괜찮거든요. 그냥 감당할 수 있다고 할까요? 근데 제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게 개인적으로는 더 괴로워요. 그 주변이라 함은 이제 제 노래를 듣는 분들도 포함이 될 수가 있겠죠. 제 음악에 공감을 하는 게 저는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당신은 어떤 시간들을 보냈길래 이 곡들을 마음에 두고 있는가'라는 생각 때문에요. 그 공감에 너무 걱정이 되고 심란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듣게 될 음악들은 그런 사람들 곁에 머물면서 조금 더 생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우선 저부터도 많이 달라진 것 같기는 해요. 이전엔 저 하나 건사하기에도 많이 벅찼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것인지도 몰랐죠. 주변을 돌볼 여유도 겨를도 없었죠. 물론 지금도 여유가 풍족한 건 아니지만 이제는 고개를 돌릴 수 있는 정도는 된 것 같거든요. 제가 적극적으로 앞장서 함께 싸워주지는 못할지만 같이 옆에 있어줄 수는 있지 않을까라는 정도로 발전한 것 같아요. 4년이라는 시간 동안에요."
-설아 씨도 음악으로부터 치유를 얻은 거네요.
"그런 것 같아요. 왜냐면 제가 가졌던 고민의 지점들을 어쨌든 계속 토해내왔기 때문에요. 잘 게워 내서 좀 청정해진 느낌이에요. 안 그랬으면 체했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 과정들이 있어서 지금의 맑은 정신이 생겨날 수 있는 공간이 있게 되지 않았나 합니다."
-노랫말이 시적이고 너무 좋은데 말씀도 잘 하시네요. 평소 사유한 것들은 어떻게 정리를 하시나요.
"전 원래 수첩을 거의 손에서 안 뗄 정도로 매일같이 들고 다니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디지털화된 것에 익숙해서 잘 안 쓰게 됐어요. 하지만 펜과 노트라는 물성이 없어지니까 그냥 생각들이 날아가는 거 같았고 그게 최근 고민이었어요. 그래서 한 달 전부터 새 노트와 펜을 사서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다만 수첩을 쓰지 않은 사이에 작업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생기긴 했어요. 예컨대 휴가를 가서도 감상에 딱 젖는 때가 있으면 그걸 직업적으로 접근을 하게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뭘 쓰지 않으니 빛이나 바람에 대해 순간 더 집중하는 사람이 된 거 같았어요. 이전엔 그걸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수첩에 적어내 상황을 그걸로 끝냈거든요. 무조건 제 감정은 적고 끝나는 것이었어요. 여운이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제가 느낀 걸로 반드시 뭘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타이틀곡 중 하나인 '친구야'는 싱어송라이터 김사월 씨가 피처링을 했는데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제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4집 활동을 같이 했거든요. 전국을 다니면서 공연을 했는데 통영 공연 때 사월 씨랑 같이 공연을 하게 된 거예요. 그 때 처음 제대로 인사했어요. 이후 가까워져서 자주 보게 됐어요. 사월 씨 밴드의 키보드가 공석이 돼 지금 도와주고 있기도 해요. 제가 너무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한데 저와 작업하는 스타일이 진짜 비슷하시더라고요. 곡을 처음부터 혼자 만들고 편곡을 하는 과정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 전에 이것저것 시도를 해본다든지, 녹음실에 갔을 때 파일 트랙들을 본인이 다 감독을 해야 속이 시원하다든지 그런 게 비슷했어요. 그런 얘기를 엄청 많이 나눴었어요. 그러다 서로 준비 중인 앨범의 수록곡을 하나씩 들려준 거죠. 그러면서 '피처링이 고민되는 곡이 있다. 사월 씨한테 부탁하고 싶은데 너무 짧고 맨 뒤에 나오는 구간이라 나도 확신이 없다'고 털어놨어요. 그 곡이 '친구야'였죠. 이런 고민을 나누는 자체로 좀 정리가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곡을 들려줬더니 사월 씨가 울고 계신 거예요. 이 곡은 쌍방의 소통이 필요한 곡이에요. 제가 말하는 것에 대한 화답을 해줄 대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제 딴에는 이 노래의 가사를 쉬운 말들로 썼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제가 표면적인 말로만 제 마음을 표현해도 그 마음을 다 알아주고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화답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사월 씨가 떠올랐어요. 음악 얘기를 하면서 너무 공통분모가 많았기 때문에 제가 많이 이해 받고 위로 받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음악적으로도 그런 부탁을 드리고 싶었어요."
-트랙 배치가 유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기준이 있었나요?
"4번('불꽃놀이'), 5번('오해'), 6번('면역') 트랙 같은 경우는 많이 다운돼 있는 곡들이 배치가 돼 있어요. 이들 트랙 이후 (또 다른 타이틀곡인) '작은 마을'이라는 곡으로 이어져요. '작은 마을' 앞쪽에 제가 자각했던 어떤 현실이라든지, 제가 바라보고 싶고 지켜내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으로는 막을 수 없었던 절망들을 빼놓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작은 마을'로 흐르기까지의 길에 이런 무너지는 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꼭 함께 표현을 하고 싶었어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곳으로 흐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는 서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트랙 배치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앞서 말씀하셨던 거랑 연관이 되네요. 조금 단단해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것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내보일 때 저는 더 잘 살 수 있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보이는 것을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죠. 하지만 제가 궁극적으로 꿈꾸고 닦고 싶은 것들도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어요."
-후반부에 배치된 트랙들은 어떤 성질의 것들인가요?
"제가 원래는 피아노 기반으로 만들어진 노래들을 많이 냈었는데 이번 앨범 앞에 있는 트랙들은 제가 해왔던 것보다는 피아노의 비중이 많이 덜어져 있거든요. 근데 뒤쪽으로 가면서 다시 피아노의 성질이 좀 두드러지게 돼요. 어떤 고민의 시간들이 지나서 내가 바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을 하는 거죠. 제가 믿고 기다리는 상태를 차분하게 구현하기 위해서 피아노 중심의 곡들을 후반부에 배치하게 된 거죠. 제 의지 같은 것들을 지켜내고 싶은 사운드로 자리 배치를 한 거죠. 마지막 트랙 '작은 자유'라는 곡은요. 제가 비틀스 노래들을 되게 많이 듣고 그중에서도 존 레넌 솔로 음반을 많이 들었는데 그가 말하고 노래하는 평화가 이 곡에서 느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사랑할 자리를 만들기 위해, 그런 곳에 닿기 위해 지녀야 할 태도 같은 것들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사운드적으로도 구현을 함으로써 마무리를 지어보려고 했습니다."
-이번 앨범을 완성하고 발매한 직후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정말 후련했어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자신한테 부끄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것만으로도 많이 후련했어요. 또 초반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한테 들려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죠. 이런 기분들은 처음인 거 같아요. 이전엔 항상 찝찝했거든요. 음반을 낸다고 해서 제 생활이나 이 세상에 큰 이변이 생기는 건 아니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요. 그런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항상 뭔가 풀리지 않는 답답함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그것들과 별개로 이 노래들이 어디로든 퍼져서 잘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은 마을' 쇼케이스는 어떻게 꾸며집니까?
"'작은 마을'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음악을 듣고 모여드는 분들이 이 마을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평소에 제가 위로를 받는 지점들이 이상한 게 아니고 내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는 걸, 저와 비슷하게 느끼는 분들이 있다는 확인으로 위로를 받는데 그런 분들과 함께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또 저한테는 위로가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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