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정부가 과학기술을 대하는 방식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정치쟁점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예산의 원점재검토"를 지시한 이후 불거지기 시작한 R&D 예산 삭감논란이 정치권으로 옮겨 붙더니 이달 들어 예산안 심의가 본격 진행되면서 여야 간 핵심쟁점의 하나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야당은 국가의 미래성장 기반인 R&D 예산을 "대통령 말 한마디에" 대폭 삭감했다며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반면, 여당은 "문재인 정부 동안 R&D 예산이 10조원이나 급격하게 늘었다" 며 그 과정에서 R&D 전반에 퍼진 비효율과 나눠먹기 관행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예산은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다. 특히나 국가 재정이 어려울 때에는 불요불급한 지출을 구조조정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정부 총지출을 늘리면서 R&D만 16.6%나 깎은 것은 정도가 심했다. 더욱이 대통령이 'R&D 카르텔'까지 거론하면서 과학기술정책을 '정치화'시킨 것은 'R&D다운 R&D'를 하겠다는 취지를 최대한 인정하더라도 부작용을 낳고 있다.
R&D 예산 삭감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이 어떻게 매듭지어질 지 현재시점에서 알 수 없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 R&D 예산 파동이 앞으로 국가운영에 끼칠 치명적인 피해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는 '국가 과학기술혁신 시스템의 무력화'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정책의 최상위 기구로 대통령이 의장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두고 있고 담당부처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그 안에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운영하고 있다. 재정당국과 별도로 R&D 예산을 포함한 과학기술정책은 별도의 거버넌스 체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6월말에 과기자문회의가 과기부가 마련한 R&D 예산 '배분·조정안'을 의결하면 기재부는 이를 바탕으로 R&D 예산을 '편성'하는 절차를 따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기자문회의 의결안이 기재부에 의해 '일부 수정'되는 것은 매년 벌어지는 일이었고 그것 자체도 논란이 계속 됐었지만 이번처럼 '형식'조차 지키지 않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정부가 법을 우습게 여긴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과기부가 재정전략회의 당일까지도 대통령이 원점재검토를 지시할 것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6월 30일로 예정됐던 과기자문회의는 부랴부랴 취소되고,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각 부처와 함께 반년넘게 작업했던 예산안은 휴지조각이 됐다. 이후 '전면재검토' 과정에서 벌어진 혼란상은 말할 것도 없다. 불과 두 달만에 총 16.6%라는 사상초유의 예산삭감이 이뤄졌다.
둘째, 학생연구원 문제다.
정부 R&D 총 예산 16.6% 삭감, 출연연 주요사업비 25.2% 삭감이 학생연구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지 가늠하기 어렵다. 작년 기준으로 정부 R&D 예산의 약 24.3%인 6조9738억원이 대학에서 사용됐다. 석·박사 학생들의 인건비가 대부분 여기에서 나온다. 출연연구기관에 소속된 학생연구원 등 비정규직 인력은 전체 인원의 30.6%를 차지한다. 기업이 지원하는 연구비도 정부 출연금에 영향을 받는 게 현실이어서 삭감된 예산이 현실화되면 이공계 대학 연구실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제 막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할 20대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이번 R&D 예산 논란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계속 공부를 해야 할까?
지난 10월 30일 4대 과기원을 포함해 11개 대학 총학생회가 'R&D 예산 삭감 대응을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을 결성하면서 발표한 성명문의 제목은 '공부할 수 있는 나라, 연구하고 싶은 나라를 위하여'였다. 이공계 대학생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지난 2019년 병역특례 인원 축소 발표 이후 4년여 만이다.
연구실을 한 번 떠난 학생은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국가 과학기술 생태계가 바닥에서부터 무너지지 않도록 정부가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최상국 기자(skchoi@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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