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S+]현정은 회장이 쉰들러에 맞서지 않았다면…'풍전등화' 韓 승강기

이한듬 기자 2023. 11. 10. 06: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13일 현대엘리베이터 충주 스마트 캠퍼스에서 열린 '미래비전 선포식'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사진=현대엘리베이터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의 1대 주주로 올라가는 기회를 엿보고, 1대 주주가 되면 과거 중앙엘리베이터를 인수한 뒤 정리했던 것처럼 (현대엘리베이터를) 적당히 팔고 떠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의원(국민의힘·비례대표 비례)은 최근 금감원을 대상으로한 국정감사에서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인 스위스 승강기업체 쉰들러 홀딩스를 겨냥해 이같이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 끊임없이 소송 등을 벌이고 있는 쉰들러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있는 게 아니냐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정치권에서 쉰들러의 행보에 공개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유일한 토종 승강기 기업인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쉰들러의 몽니가 그만큼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인연이 악연으로… 현대-쉰들러, 20년 잔혹사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와 지독한 악연으로 엮인 업체다. 그동안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빼앗기 위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 노골적인 경영권 장악을 시도해왔다.

시작은 훈훈했다. 쉰들러는 2003년 현 회장이 시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를 놓고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시절 백기사로 등장했다. 당시 쉰들러는 현 회장을 돕는대신 현대엘리베이터의 승강기 사업 인수를 원했지만 경영권 분쟁이 현 회장의 승리로 끝나면서 무산됐다.

이후 쉰들러는 노골적으로 승강기 사업을 차지하기 위한 의도를 드러냈다. 2006년 KCC로부터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5.5%를 매입해 2대주주에 올랐다. 2010년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나서자 승강기 사업을 넘기면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 적대적 M&A를 시도했다.

2014년에는 현 회장이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위해 금융사들과 맺은 파생금융상품 계약으로 현대엘리베이터가 손해를 입었다며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9년에 걸친 공방 끝에 지난 4월 현 회장이 1700억원과 지연이자 등 2000억원 가량을 회사에 갚는 것으로 결론났다.

/ 사진=김동욱 기자
쉰들러는 판결 6일 만에 강제집행 절차에 돌입하는 등 현 회장을 압박했지만 배상금 전액을 신속하게 납부하며 현대엘리베이터를 지켜냈다.

하지만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를 흔드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쉰들러는 지난 6~8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17만주를 매각했다. 표면상 '투자자금 회수목적'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주가 하락을 유도해 현 회장의 경영권을 흔들기 위한 목적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었다.

앞서 현 회장은 쉰들러에 대한 배상금 납부를 위해 보유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빌렸는데, 주가가 하락하면 담보가치가 떨어져 채권자로부터 반대매매를 당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윤창현 의원도 쉰들러의 지분 매각에 대해 한 사모펀드(PEF)와의 통정매매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통정매매는 매수할 사람과 매도할 사람이 가격을 미리 정해 놓고 일정 시간에 주식을 상호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게 해 주가를 조작할 우려가 있다.

이와 관련 윤 의원은 쉰들러가 지분 매도로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를 떨어뜨려 시장에 매물이 나오도록 유도해 경영권을 흔드는 게 아니냐며 금감원에 쉰들러의 거래를 주의깊게 살펴볼 것을 당부한 바 있다.


현대엘리 뺏기면 국내 승강기 산업 '와르르'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에 욕심을 내는 것은 국내 승강기 시장 확대와 연관이 있다. 한국은 중국와 인도에 이어 세계 3위 규모의 엘리베이터 내수시장을 갖췄으며 현대엘리베이터 점유율은 40%로 1위다.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를 장악하게 되면 단숨에 국내 1위 사업자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 경우 외국계 기업들이 점령하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승강기 업체 중 토종 기업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유일하다. LG의 승강기 사업은 미국 오티스에 인수됐으며 동양은 독일 티센쿠르프(현 TK엘리베이터)와 합병했다.

국내에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있는 승강기 업체도 현대엘리베이터(충주) 뿐이다. 이 때문에 적기에 부품 조달과 사후 서비스가 가능하며 지역 경제에도 공헌하고 있다. 외국계 업체들이 생산단가 및 수익성 효율화 등을 이유로 값싼 중국산 등 해외 부품을 조달하고 있는 것과는 대비된다.

지난 2013년 7월22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남편인 고(故) 정몽헌 회장의 10주기 추모 사진전 개막식에서 임직원 1만여명의 사진으로 만들어진 대형 모자이크 사진 중 마지막 한 조각을 끼우며 정 회장의 꿈을 잇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 사진=현대그룹
업계도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를 장악하게 되면 국내 공장 철수가 이뤄질 가능성에 우려를 표한다. 실제 쉰들러는 2003년 중앙엘리베이터를 인수한 뒤 시흥공장을 물류창고로 전환한 전례가 있다.

이 같은 사태가 재연될 경우 승강기 산업 생태계는 물론 지역 경제가 흔들릴 것이란 게 중론이다. 국내 생산기반이 사라지면 외국 업체가 부르는 가격으로 거래할 수밖에 없는 것도 문제다. 그렇다고 값싼 제품을 들여오면 안정성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현정은 회장이 쉰들러의 압박에도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넘기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 회장은 승강기 사업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 회장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故) 정몽헌 전 회장의 뜻을 계승해 현대엘리베이터를 유지·발전시켜 국내 승강기 산업 생태계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전했다.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사업 역량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대엘리베이터를 2030년까지 매출 5조원, 해외사업 비중 50%, 글로벌 톱5 기업으로 도약시킬 방침이다.

이한듬 기자 mumford@mt.co.kr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S & money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