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랑트리(Gallantry)’를 아시나요?[이제학의 힐링카페]
“그 양반은 나이 들면서 염치가 없어졌다.”
내로라하는 유투버가 정치권의 유명한 모 인사를 지칭하면서 던진 말이다.
‘빈대도 낯짝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몸길이 5㎜ 안팎에 머리는 더 작아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빈대지만 녀석에게도 낯짝은 있다는 것이다. 낯짝은 곧 체면이요 체면은 염치, 즉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작고 천한 미물이지만 그런 미물도 부끄러움은 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도직입적으로 상대방에게 말을 꺼낼 때 ‘염치불구(고)하고 말씀 드리겠다’고 말한다. 이 염치廉恥)는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인간으로서 반드시 기본으로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이다. 순 우리말로는 주리팅이라고도 한다.
흔히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염치도 없는 놈’과 같이 사람을 비난할 때 쓰곤 한다. 혹은 ‘염치없지만‘, ’염치불고(廉恥不顧)하고‘와 같이 상대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할 때 이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염(廉)은 참는 마음이고 치(恥)는 부끄러운 마음이다. 이 염치가 없는 상태를 몰염치 혹은 파렴치라고 한다.
가뭄에 어른은 굶어 죽고 아이들은 배불러 죽는다는 말이 있다. 백수의 왕 사자도 자기 먹을 것은 스스로 사냥한다. 하지만 사자는 사냥감을 자기가 먼저 충분히 먹은 후 새끼들에게 먹게 한다.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다. 아울러 어른이 된다는 책임이자 염치다. 염치가 있고 체면이 있는 노인, 서양에서는 이를 ‘갈랑트리’라는 이름으로 칭송한다. 영국의 신사도 역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갈랑트리(Gallantry)’는 공손함, 용기, 기사도 등과 관련된 단어로 주로 남성이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하는 용감한 행동, 배려, 품위 있고 예의 있는 태도를 말한다. 엘리자베스 2세가 마차에서 내릴 때, 그녀의 발아래 있는 진창물 위에다 자신의 망토를 벗어서 깔았다는 월터 롤리(16세기 영국의 정치가)의 갈랑트리가 기사도 정신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고령은 훈장이 아니다. 루터 킹 목사는 “최악의 비극은 젊을 때 죽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살았노라 말 할 수 없는 상태로 75세까지 살았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평소 즐겨 썼다. 맹자는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고 일갈했다. 체면을 차리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가 있어야 반성하고, 사과도 하고, 책임감도 생겨나는 것이다.
서양사를 보면 연애결혼의 단초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발생한 갈랑트리 유행에서 꼬리가 잡힌다. 갈랑트리는 원래 두려움 없이 적진에 돌진하는 중세 기사의 용감함을 뜻했다. 그러다 귀족 남성들이 남의 아내를 유혹하는 유행으로 의미가 변하게 됐다.
이 시기 갈랑트리의 뜻은 ’집적거린다.‘ 혹은 ’껄떡댄다.‘는 것이었다. 상대의 남편과 결투를 해야 할 수도 있고, 거절당하는 공포도 만만치 않으니 따지고 보면 장수의 용맹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은 마음에 드는 여성을 대할 때의 친절하고 예의 바른 행동을 의미한다.
한편 베트남의 갈랑트리 크로스 또는 갈랑트리 베트남 십자가는 전 남베트남 정부(베트남 공화국)의 군사 훈장이다. 이 훈장은 1950년 8월 15일에 제정되어 적과 전투하는 동안 용감하거나 영웅적인 행위를 한 공로를 인정받아 군인, 민간인, 국군 부대 및 단체에 수여되었다.
요즘은 가히 욕망이 지배하는 시대다. 우주의 섭리는 노력하는 자의 땀과 눈물에 관심이 없다. 우리는 노력에 의해 부, 지위, 명예, 인기와 같은 열매를 얻는다. 하지만 때로는 의도되지 않은 현상에 의해 세상에 흐르는 돈과 관심이 특정 한 지점에 깊게 고이는 모습도 목격한다. 이럴 때도 행복의 기술은 간단하다. 나이 들면 한 발 물러나서 이를 관조해야 한다.
1미터 밖에서 일어난 타인의 성공은 나에 대한 세상의 배신행위가 아니라 풍경이다. 풍경은 반경 1미터 안의 사정과는 다르다. 보고 싶으면 보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눈을 돌리면 된다. 〈관자(管子)〉에서는 “예의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롭고 염치가 사라지면 나라는 멸망한다.”고 했다. 부끄러움이 없으니 나라야 망하든 말든 못할 짓이 없기 때문이다. 가치와 행복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예의와 염치에 어긋남은 없는가?
<사단법인 힐링산업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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