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까지 이어진다” ....전국으로 퍼지는 전세사기 피해[비즈니스 포커스]
공기업도 속인 투기꾼, 손대기 어려운 정부
지난해 수도권에서 불거진 전세사기 문제가 전국 곳곳으로 번지는 가운데 최소 내년까지는 피해사례가 속출할 전망이다. 지난 몇 년간 부동산이 급등하며 사태의 주범인 ‘무자본 갭투자’ 투기수요가 전국의 다세대 및 다가구주택으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 ‘빌라왕’ 사건을 계기로 이 문제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질 당시까지 이들 투기수요에 의해 맺어진 임대차 계약이 2년 뒤인 2024년에도 만료시기를 맞는다.
피해 건수가 늘며 그 규모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자는 청년층 또는 무주택 서민이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 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 6월 시행된 ‘전세사기 특별법’에 대해 “피해자 지원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택 경매 시 피해 임차인에게 주어지는 우선매수권이 ‘최고입찰가’에 행사 가능하다는 점이나 대출 지원에 소득요건이 있다는 점 등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지 모르는 피해 전체를 정부에서 책임지기는 어렵다는 신중론 또한 존재한다. 이미 전세보증을 제공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피해가 1조원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기피 투자처 다가구에 투기꾼 몰려
‘빌라왕’의 전세사기에서 출발한 피해 양상은 ‘건물왕’으로 확대됐다. 다세대, 연립 등을 통칭하는 빌라는 4층 이하 높이의 공동주택으로 세대별로 소유권이 구분돼 있다. 다가구주택은 한 건물에 여러 호실이 있으나 각 세대의 소유권이 구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영된다. 따라서 한 임대업자 또는 일당의 범죄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자 수나 피해 규모가 크다.
최근 수백 명의 피해자를 낳은 수원과 대전 사건 임대업자들도 다가구 건물주였다. 대전에선 다가구주택 약 200채를 보유한 일당이 전세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번 대전 전세사기 피해 규모는 약 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수원 다가구 전세사기 역시 임대인인 정모 씨 일가 소유 건물이 수원, 화성, 용인 등에 걸쳐 총 52개로 파악되며 피해액은 123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전세사기 피해를 일으킨 다세대주택과 ‘통건물’ 형태인 다가구주택 등은 오랫동안 주택 투자자들에게 기피 투자처였다. 아파트만큼 환금성과 시세차익 모두를 충족하는 상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다가구주택은 매도하기 어렵고 관리도 까다롭다는 이유로 은퇴한 고령자들이 월세를 받아 임대수익을 얻는 통로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2016년부터 수도권 집값이 급등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몇 년 새 두세 배는 우습게 뛰었다. 신축 아파트 열풍을 불러오며 ‘중산층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는 전용면적 84㎡ 타입이 2016년 7억~8억원대에서 실거래되다 2018년 15억원을 기록했다. 부동산 경기가 정점을 찍었던 2021년 하반기에는 19억원대 거래가 나오며 20억원 언저리까지 갔다. 일명 ‘노도강(노원·도봉·강북)’, ‘금관구(금천·관악·구로)’ 등 서울 외곽 소형 주공아파트 가격도 도미노로 급등했다.
아파트 매매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율 또한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1억~2억원만 투자하면 전세를 끼고 살 수 있던 아파트 가격이 전세가를 급하게 따돌렸다.
이에 따라 갭투자 수요는 대체재인 빌라, 더 나아가서는 다가구주택이나 근생빌라로 옮겨갔다. 실수요는 많지만 주택공급이 부족한 지역이나 신축 빌라, 건물에선 무자본 갭투자도 가능했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전세 선호도가 더 높아진 데다 전세대출 보증 등 정책적인 지원도 더해지며 전세 수요자도 늘었다. 이 같은 환경에서 처음부터 보증금을 빼돌리려는 목적에서 바지사장 등을 내세우거나 소유권을 신탁사에 넘기는 일당들도 있었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이렇게 손에 들어온 일명 ‘깡통주택’ 역시 아파트의 대체재로서 시세가 오르면 시세차익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했다.
LH도 당하는 사기, 특별법 사각지대 많아
그러나 지난해 금리인상을 기점으로 거품이 꺼지며 뇌관은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에서 피해사례가 쏟아졌지만 여전히 기존 임차인 상당수는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할 위험에 처해있다.
국토연구원 윤성진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보증금 반환 지연 및 미반환 구조 이해와 임차인 불안 완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보증금 미반환 위험가구’가 2만~4만2000여 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증금 미반환 위험가구’는 전세보증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데다 최우선변제금이 전세보증금보다 적어 임차인이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가구를 뜻한다.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로부터 피해 사실을 인정받은 7590명(10월 26일, 국토교통부 기준)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셈이다.
이처럼 사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제도적 허점이 나타나기도 했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통해 임대차 주택을 담보로 한 부채는 확인이 가능한 반면, 집주인의 세금·채무 등이 잡히지 않아 집이 압류된 사례도 많았다. 최근 피해가 쏟아지고 있는 다가구주택 전세사기의 경우 한 건물에 존재하는 선순위 임차보증금 또한 알 수 없어 더 문제가 됐다. 심지어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전세지원제도를 운영하면서 선순위 보증금을 확인하지 못해 돈을 떼일 상황이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경매 물건에 대해 현황조사보고서를 작성하는 법원 집행관도 선순위 보증금을 다 파악하기는 어렵다”며 “이 때문에 다가구주택 후순위 임차인들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1일 시행된 ‘전세사기 특별법’(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대한 특별법)에도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전세사기 특별법의 골자는 피해자들에게 기존 임차인에게 경매에 넘어간 주택에 대해 최고 낙찰액으로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거나 LH가 해당 주택을 매수해 공공임대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피해자는 저리로 전세자금 또는 낙찰받은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 밖에 생계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며, 피해자들이 미상환 사실에 대해 신용정보 등록을 유예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이 있다.
그러나 안상미 전세사기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정부의 대출 지원은 소득 요건이 있어 이미 요건에 해당이 안 된다는 이유로 대출을 받지 못한 피해자가 있다”며 “이미 전세보증금을 떼인 상태인 피해자들이 경매에서 최고 낙찰가로 그 집을 사들이면서 또 빚을 내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가구 임차인들은 경매를 통해 건물 전체를 매수해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방법을 활용하기도 어렵다. 안 위원장은 “전세사기가 제도적 허점에서 비롯했다는 점에서 피해 단체는 정부가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보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장관 나서도 역부족
결국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장관은 물론 대통령까지 나섰다. 전세사기 범죄에 대해 엄벌하고 사각지대가 없도록 기존 대책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전세사기는 피해자 다수가 사회 초년생인 청년들로 미래세대를 약탈하는 악질적 범죄”라며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의 피해액을 피해자별로 합산하여 가중처벌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개정을 서둘러달라”고 발언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국정감사에서 “사각지대가 생기는데 이 부분을 메울 수 있도록 점검해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 단체가 요구하는 ‘선구제 후회수’ 방식의 대책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지금처럼 피해 규모가 얼마나 더 커질지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섣불리 모든 피해금액을 지원하겠다고 나서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전세보증금보험 제공기관인 HUG는 현재 선구제 후회수 방식으로 자사가 보증한 전세에 대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대위변제하고 구상권 청구를 통해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그런데 10월 31일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보증을 시작한 2013년 8월부터 올해까지 HUG가 대위변제액 회수를 위해 경매에 부친 주택 4622채 중 26.4%인 1221채만 낙찰된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HUG가 대위변제한 9263억원 중 돌려받지 못한 금액은 7579억원에 달한다. HUG는 2022년 1126억원 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전세사기는 홍수 피해처럼 단기간에 피해지역이 국한돼 피해 규모가 적당히 추산되기 어려운 문제”라며 “정부로서도 앞으로 몇 조원이 투입돼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피해금액을 보전해주겠다고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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