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제지 주가조작 사건…무자본 M&A에서 시세조종까지[꾼들의세계]
※금융시장이 커질수록 그 속에 숨어드는 사기꾼도 많아집니다. 조 단위의 주가조작부터 수천억원에 이르는 횡령, 트렌드에 따라 아이템을 바꿔가며 피해자를 속이는 보이스피싱까지. 기발하고 대범한 수법은 때론 혀를 내두르게 만듭니다. ‘꾼들의세계’는 시장에 숨어든 사기꾼들의 수법을 들여다보는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 해주세요!
주식시장을 흔드는 주가조작 사건이 또 일어났다. 지난 4월 라덕연 일당의 주가조작 사건. 6월 5개종목 하한가 사태를 빚은 온라인 주식카페 운영자의 주가조작 사건. 그리고 지난달에는 53년 업력의 골판지 제조사 영풍제지를 타깃으로 한 주가조작 사건이 시장을 시끄럽게 했다.
현재는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건은 관련자 4명이 지난 3일 구속기소 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1년 동안 3만8000여차례에 걸쳐 영풍제지 주가를 끌어올린 혐의를 받는다. 검찰이 추산한 이들의 부당이득금은 2789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들 4명 외에 영풍제지의 실소유주 또한 주가조작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영풍제지의 최대주주 대양금속, 그리고 대양금속의 최대주주 대양홀딩스컴퍼니(이하 대양홀딩스)도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양홀딩스는 어떻게 53년 업력의 골판지 회사를 인수했나
대양홀딩스를 최대주주로 둔 대양금속은 1년 전 영풍제지를 인수했다. 영풍제지의 최대주주는 대양금속, 대양금속의 최대주주는 대양홀딩스인 구조다. 대양홀딩스는 2019년 ‘블랙홀컴퍼니’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는데, 2020년 대양금속을 인수하면서 대양홀딩스로 이름을 바꿨다.
대양홀딩스에 인수되고 2년이 지나 대양금속은 영풍제지를 인수했다. 대양금속은 지난해 6월 그로쓰제일호투자목적주식회사와 영풍제지 주식 양수도 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10월 영풍제지의 최대주주가 됐다. 당시 대양금속은 영풍제지 지분 약 50%을 1300억원에 사들였는데, 이 중 차입금이 861억원이었다. 대양금속의 자기자금은 439억원에 불과했다.
심지어 대양금속은 861억원을 빌리면서 아직 손에 다 들어오지도 않은 영풍제지 주식을 담보로 잡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영풍제지는 엘제이에이치투자1호조합에서 100억원을 빌리면서 영풍제지 보통주 185만주를 담보로 제공했다.
대양금속은 당시 439억원의 자기자금을 ‘보유자금’이라고 공시했지만, 이 또한 대부분 빌린 돈이었다. 영풍제지 인수를 전후로 대양금속은 ‘타법인 증권 취득’ 목적으로 전환사채 150억원을 발행하고, ‘타법인 증권 취득 및 운영자금’으로 230억원의 단기차입금을 추가로 빌렸다. 결국 1300억원 가량의 영풍제지 인수에 대양금속이 쓴 돈은 60억원 남짓이었다.
대양홀딩스 관계자들은 전에도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논란이 된 경험이 있다. 이들이 대양금속과 영풍제지 전에 손을 댔던 코스닥상장사 에스에프씨와 연이비앤티는 현재 상장폐지된 상태다. 단, 연이비앤티는 먼저 상장폐지 요건이 발생해 거래가 정지됐고, 이후 대양홀딩스가 인수했지만 상장폐지를 피하지 못한 경우다.
무자본 M&A가 불법은 아니라지만…
무자본 M&A가 불법은 아니다. 그럼에도 무자본 M&A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인수자가 상장사를 빚을 내서 사들인 뒤, 유가증권시장이나 코스닥시장에서 거래되는 상장사라는 점을 이용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워 시세차익을 얻거나 거액의 자금 조달에 이용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도 2019년 무자본 M&A에 대한 기획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같은 위험성을 경고했다. 금감원은 “무자본 M&A는 기업사냥꾼 등 특정 세력이 자기자금보다는 차입금을 이용해 기업을 인수하는 것으로 그 차제는 불법이 아니”라며 “다만, 무자본 M&A 기업 인수자는 정상적인 회사 경영보다는 회사를 통해 거액을 조달하거나, 인수 주식의 매도를 통한 시세차익을 위해 불공정 거래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양금속도 영풍제지를 인수한 후 영풍제지를 자금 조달에 이용했다. 대양금속은 영풍제지를 인수한 그해 12월8일 ‘운영자금과 채무상환자금’으로 전환사채 170억원을 발행했는데, 전환사채를 모두 영풍제지가 사들였다. 대양금속은 영풍제지를 사려고 빌린 돈을 영풍제지의 돈으로 메꾼 셈이다.
실소유주도 주가조작 관여했나
문제는 대양홀딩스가 무자본 M&A로 영풍제지를 인수한 후 영풍제지의 주가조작에 가담했는지 여부다. 검찰은 대양금속과 대양홀딩스가 이번 사건에 개입했는지도 따져보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달 23일 영풍제지와 대양금속, 대양홀딩스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영풍제지 주가조작으로 이득을 보려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주체는 또 있다. 대양금속은 영풍제지를 인수한 직후부터 올해 3월까지 여러 투자조합에 영풍제지 주식을 팔았다. 이때 엘제이에이치투자1호조합, 에스제이투자조합, 다온투자조합 등 다수의 투자조합이 대양금속에게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영풍제지 주식을 사 갔다.
투자조합들이 주식을 사간 후 올해 4월 초 영풍제지는 이사회 결의를 통해 보통주 1주당 1.5주를 배정하는 무상증자를 결의했다. 통상 대규모 무상증자는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를 희석해 주가를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풍제지는 무상증자 전후로 주가가 하락하다 이내 회복됐다. 무상증자 전에 주식을 사들인 투자조합들로써는 단기간에 보유 주식 가치가 2.5배 넘게 뛴 것이다.
엘제이에이치1호투자조합의 관계자 이모씨와 대양홀딩스 관계자 공모씨도 검찰의 수사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풍제지 사건을 잘 안다는 제보자 A씨는 “대양홀딩스 일가가 영풍제지를 무자본 M&A로 인수한 후 영풍제지 주식을 띄워서 시세차익을 보려고 했던 것이고 투자조합들도 이에 가담했다”며 “차익실현 계획까지 마련돼 있었고, 이런 내용을 금감원에도 제보했다”고 밝혔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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