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문화유산 약탈 금지법이 없었으니 합법이다’
모나리자의 집은 어디인가
문화유산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의 세계사
김병연 지음 l 역사비평사 l 2만6000원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일본 쓰시마의 한 사찰에서 도난당해 국내로 들여온 고려시대 불상의 소유권이 일본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제작된 이 불상은 왜구에 의해 약탈당하였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유출 경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으며 일본의 사찰이 20년 넘게 문제없이 소유했기 때문에 ‘취득 시효’ 법리에 따라 소유권이 이 사찰에 넘어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을 대표하는 미술품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1911년 8월에 도난당했다가 2년여 만에 회수된 바 있다. 이탈리아 출신인 범인은 그림을 다빈치의 모국인 이탈리아에 돌려주려는 애국심의 발로였다고 주장했고 재판 과정에서 이탈리아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는 이 작품이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에서 약탈해 간 미술품 중 하나였다고 믿었는데, 오해였다. 다빈치를 숭모했던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는 1516년 그를 초청해 프랑스에 정착하도록 지원했고, 이곳에서 완성한 ‘모나리자’를 다빈치의 사후 그의 제자 살라이가 상속받았으며 프랑수아 1세가 살라이로부터 작품을 구매함으로써 이 그림은 프랑스의 소유가 되었다.
이 두 사례에서 보듯 약탈과 도난, 구매 등으로 원산지를 벗어난 문화유산은 종종 소유권 분쟁에 휘말리곤 한다. 문화재청에서 오랫동안 국외문화재 환수 업무를 담당했던 지은이(김병연)는 ‘모나리자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문화유산을 둘러싼 갈등의 역사를 되짚고 국외로 반출된 문화유산을 되찾은 사례들을 소개한다. 국제법을 전공한 그는 관련 법규와 법리에 의거해 논의를 이어 가는데, 기득권을 지닌 강대국들의 자의적 법 적용을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한다.
문화유산은 멀게는 수천년 전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물건을 가리키는데,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이 국제법에 처음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54년이었다.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문화유산의 대규모 약탈과 훼손을 경험한 각국 정부 대표들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모여 채택한 ‘무력 충돌 시 문화재 보호 협약’(‘1954년 헤이그 협약’)에서였다. 한국에서는 1960년 국무원령 제92호로 공포된 ‘문화재보존위원회규정’에서 문화유산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근대 이전에는 전쟁에서 이긴 쪽이 전리품을 약탈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예술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서기 81년 로마에 건설된 티투스 개선문 남쪽 기둥에는 티투스 황제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에 있던 일곱 갈래 유대 촛대 메노라를 약탈해 옮겨 오는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혁명군은 이탈리아에서 600여 점의 예술품과 조각상을 약탈해 왔는데, 바티칸 소장 조각 ‘라오콘 군상’과 하이델베르크대학 도서관 고서들이 그에 속했다. 나폴레옹이 패배한 뒤 프랑스의 전쟁 책임을 묻고자 열린 1814~5년 빈회의를 통해 ‘라오콘 군상’을 비롯한 약탈품 300여 점이 이탈리아에 반환되었고, 하이델베르크대학 고서들 역시 하이델베르크로 돌아갔다. 약탈 문화유산의 원소재지 반환을 뜻하는 ‘하이델베르크 원칙’이 이때 탄생했다.
1954년 헤이그 협약이 문화유산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면 1972년에 발효된 ‘문화재의 소유권 이전과 불법적인 수출입의 금지 및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은 도난이나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유산이 기원국으로 환수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과거 식민 지배 시절 약탈당한 문화유산의 환수가 이로써 가능하게 되었고 환수 사례가 이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서아프리카 베냉공화국의 문화유산 26점을 반환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전시되어 있던 ‘베닌 청동 수탉상’이 2021년 나이지리아에 반환되었으며, 독일이 소유하고 있던 베닌 청동품 1130점 역시 지난해 나이지리아로 돌아갔다.
책에는 우리나라의 ‘어재연 장군 수자기’ 사례도 소개되어 있다.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은 이 깃발을 포함해 깃발 50개와 중포 27문, 천보총 481정 등을 전리품으로 노획했다. 미국 법률에 따르면 이 깃발은 문화유산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전리품에 해당했지만, 2007년 대여 방식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갔다가 2011년 영구임대 형식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도 같은 경우다. 19세기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취득한 서구 열강의 약탈품 대부분은 수자기나 외규장각 의궤와 비슷한 운명에 처해 있다. “약탈의 시대에 약탈을 금지하는 법이 없었으니 합법이라는 서구 사회의 주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998년 미국 클린턴 행정부와 홀로코스트 기념관 주도로 열린 ‘워싱턴 회의’는 2차대전 중 나치가 약탈한 유대인 예술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회의였다. 1997년 10월부터 1998년 1월까지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열린 에곤 실레 특별전이 이 회의의 직접 계기가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미술관 소장품으로 전시에 나온 작품 가운데 ‘발리의 초상’과 ‘죽은 도시 Ⅲ’의 원 소유주였던 유대인의 상속인이 뉴욕 전시를 계기로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고 이에 검찰과 세관이 소환장과 압수 영장을 발부한 것. 이 회의에서 약탈품 문제 해결을 위한 11가지 원칙을 채택하고, 이어서 유럽 각국 역시 나치 약탈품 원상회복을 위한 법적·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발리의 초상’이 “세상을 바꿨다”는 평을 들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우먼 인 골드’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그 이름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Ⅰ’ 역시 그 회의의 혜택을 보았다.
책에는 이밖에도 프랑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아프리카 여성 사라 바트만의 유해 귀환, 이반 작가의 도라산역 벽화 철거를 통해 본 장소특정적 미술과 창작자의 권리, 백인 남성 예술가에 편향된 작품을 소장 해제하고 그 자리를 흑인·여성 등 소수자들의 작품으로 대체하는 미술관의 움직임 등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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