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우직지계(迂直之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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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서울로 가는 고속열차표가 매진이다.
충북 청주에서 강의를 끝내고 탑승 시각이 오후 10시 후인 표를 겨우 예약하고 기다리다보니 집에 갈 길이 막막하다.
귀경 기차표를 예약하지 않은 교육 담당자에 대한 원망에서부터 왜 공무원들은 지방에서 근무하면서 서울에 집을 두고 주말마다 오르내리는지에 대한 비판까지, 한풀이의 대상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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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것은 손해라고 생각
무조건 빠른 길만 집착땐 수렁
어떨땐 우회가 더 안전한 방법
지금은 근심이라고 여겨지는 일
기쁨·이익으로 변할 수도 있어
금요일 오후, 서울로 가는 고속열차표가 매진이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다수가 귀경하기 때문이다. 충북 청주에서 강의를 끝내고 탑승 시각이 오후 10시 후인 표를 겨우 예약하고 기다리다보니 집에 갈 길이 막막하다.
인생을 살다가 기대와 다른 상황을 만나면 마음이 우울하다. 귀경 기차표를 예약하지 않은 교육 담당자에 대한 원망에서부터 왜 공무원들은 지방에서 근무하면서 서울에 집을 두고 주말마다 오르내리는지에 대한 비판까지, 한풀이의 대상은 끝이 없다.
그러나 하늘을 원망하고(怨天·원천) 사람을 탓한다고(尤人·우인)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가다가 막다른 길을 만나면 돌아가면 된다. 기차를 포기하고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결과는 놀라웠다. 1시간20분 만에 빠르고 편하게 서울에 도착한 것이다.
고속열차를 타고 갔으면 기차를 타러 오가는 시간과 전철을 타는 시간을 포함해 3시간 가까이 걸렸을 것이다. 살다 보면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만날 때가 많다. 기대와 다른 길이었기에 마음은 곤궁했지만, 결과는 더 좋은 상황이다. ‘손자병법’에서는 이것을 우직지계(迂直之計)라고 부른다. 우회(迂)하고 돌아가는 것이 곧장(直) 가는 것보다 더 빠르고 안전할 수 있다는 계산법(計)이다.
우리는 늘 빨리 갈 수 있는 곧은 길이 좋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학교에 입학해 대기업에 들어가 젊은 나이에 고속 승진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여기고, 실패 없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대대로 순조롭게 풀리는 일 속에는 항상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 일명 승자의 저주다.
빠름 안에는 건너뛰는 생략이 있고, 성공 뒤에는 교만이 기다린다. 생략은 문제를 일으키고 교만은 몰락을 부른다. 문제와 몰락은 결국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를 인도한다. 성공이 원망스럽고, 실패가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는 대전환이 일어난다.
돌아가는 것은 지난하다. 손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렇다. 그러나 우회와 손해가 결국 직선과 이익으로 전환되는 순간이 온다.
돌아가는 것이 근심(患)이었지만 결국 이익(利)이 될 것이며, 우회(迂)하는 것이 곧장(直) 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경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손자병법’에서 ‘우직지계’를 강조하며 던지는 메시지다.
돌이켜보면 잘됐던 일이 반드시 좋은 일이 아니었고, 실망했던 일이 반드시 나쁜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일의 결과는 지나봐야 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미국의 야구선수 요기 베라(Yogi Berra)의 말처럼 지금 일어나는 일이 나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안다.
빠르게 성장하고 성공한 기업과 인물의 이야기가 반드시 부러워할 일은 아니다. 빠른 성공은 빠른 몰락을 동반한다. 공자는 빠르게 가려고 하면 제대로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欲速不達·욕속부달)고 말하며 빠른 길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했다.
국가가 정책을 내면서 빠르게 무엇을 이루려고 한다면 부작용이 따른다. 상식과 원칙을 벗어나 성공하는 데 집착하면 반드시 수렁에 빠진다. 돌아가는 것이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더욱 좋은 결과와 이익을 보게 된다는 뜻을 담은 ‘우직지계’를 고려해봐야 할 이유다. 인생을 살면서 돌아가야 할 일이 생기면 화를 내는 대신 일단 감사하자. 지금은 근심이고 손해 본다고 여기겠지만 결국 기쁨과 이익으로 변할 것이란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보자.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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