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새벽배송의 이면, 위험한 '발암물질' 밤샘노동
새벽배송 기사 사망에 "야간노동 규제"
유럽은 예외적 허용, ILO 사후관리 명시
한국은 특수검진제 있지만 실효성 낮아
"전 백업(예비) 기사라 수입이 적어서 낮에 일을 따로 하고요. 야간 고정 기사님이 아프거나 해서 대체자가 필요하면 그때그때 대리점 연락받고 나가요. 사실상 야간배송 하고 다시 본업 하면 1박 2일 밤새우는 거죠. 건강 악화가 없잖아 있기는 한데… 따로 들은 것은 없어요. 원래 쿠팡은 하청 주고 너희(대리점)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니까요."
생계 때문에 낮에는 본업을, 밤에는 간헐적 '쿠팡 퀵플렉스 기사'로 투잡을 뛰는 20대 후반 송용찬(가명)씨. 퀵플렉스 야간조 근무시간은 밤 9시 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7시니, 그의 말대로 꼬박 밤을 새우는 셈이다. 하지만 송씨는 건강 보호와 관련해 별도로 검진을 받거나 교육을 받은 게 없다고 했다.
쿠팡과 마켓컬리 같은 이커머스 기업들은 전날 밤에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물건이 도착하는 '새벽배송'을 경쟁력 삼아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쿠팡의 물류전문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의 택배 물동량 점유율(8월 말 기준 24.1%)은 지난해보다 2배 늘었다. '로켓 같은' 급성장의 후면에는 송씨처럼 시간에 쫓겨 일하는 야간 배송기사들,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밤새 일하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있다.
지난달 13일 새벽배송을 하던 60세 퀵플렉스 기사가 돌연 숨지면서 야간노동의 위험성, 과로사 문제가 다시 제기됐다. 같은 달 26일 국회 국정감사에 나온 홍용준 CLS 대표는 "다양한 이유로 새벽배송을 좋아하는 기사들도 있어서 규제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노동자가 비교적 높은 수당 등을 이유로 밤샘노동을 자처하더라도, 건강에 어떤 악영향이 있을지 정확히 알리고 과로사 등 산업재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사용자와 정부의 역할이다.
생체리듬을 깨뜨리는 야간노동이 건강에 해롭다는 건 공인된 사실이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9년 야간노동을 발암물질 둘째 단계인 2A군으로 정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자정부터 오전 5시 사이 3시간 이상 △주 3회 이상 △10년 이상 야간노동을 할 경우 위험성은 훨씬 가중된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이 야간노동자에 대한 정기적 검진과 사후관리(야간작업 부적합 시 직종 전환, 급여 보전, 해고 보호 등)를 명시하고, 프랑스나 핀란드 등은 야간근로를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이유다.
반면 한국은 야간노동자 현황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고 법적 규제는 미비하다. 제도적으로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야간근로(오후 10시~오전 6시)가 '유해인자'에 포함돼 사업주는 야간노동자에게 특수건강진단을 받게 할 의무가 있다. 의사 진단 결과 건강 악화가 우려되면 사업주는 야간근로 제한, 근로시간 단축 등 후속 조치를 해야 하고 어길 시 1,000만 원 이하 벌금형이다. 하지만 처벌 수위가 낮고 정부 단속도 드물다 보니 "실상은 근로 제한 등 강력한 조치가 이뤄지기 어렵고, 당사자에게 건강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사업장에는 근로환경 개선 실마리를 제공하는 역할 정도"(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장)에 그칠 뿐이다.
더군다나 송씨 같은 퀵플렉스 기사는 '사업주를 둔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특수고용직' 신분이기 때문에 애초 특수건강진단 의무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보호도 못 받는 것이다. 안종주 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지난달 국감에서 "새벽노동 연구나 실태조사가 없었던 게 사실이고 특고 종사자는 현재 산재 예방의 사각지대"라며 고용노동부와 협의해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도 고용부에 "야간작업 한도와 허용 요건 등 야간근무자 보호를 위한 기준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상황이다.
노동 전문 권영국 변호사는 "야간노동은 필수 업무가 아닌 이상 특정 시간 근무를 제한하는 등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인 류현철 센터장은 "사회 전체적으로 장시간 노동이 일반화되다 보니, 다른 노동자의 여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또 다른 노동자가 밤샘 노동을 하는 식으로 장시간 노동과 심야 노동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며 야간노동 확산의 근저를 짚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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