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플렉서 배송기사 근로여건 좋다"는 쿠팡, 과연 그럴까
쿠팡 "퀵플렉서 수입 높고 365일 휴가"
배송기사들 "마감 압박에 주말도 근무"
택배노조 '수행률 따라 상시 해고' 주장
"업계 2위 쿠팡, 사회적 합의 동참해야"
"CLS 배송직 근로여건은 이미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 수준을 더 상회하고 더 좋다고 생각한다."(지난달 2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홍용준 CLS 대표)
지난달 13일 쿠팡의 물류전문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로부터 재하청을 받아 '새벽 배송'을 하던 60세 퀵플렉스 기사(이하 퀵플렉서)가 숨진 일을 계기로, 노동계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퀵플렉서들의 장시간·야간 노동 실태와 과로사 위험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자 CLS 대표가 내놓은 답변이다.
반면 택배기사 경력 도합 10년이 넘고 현재는 쿠팡 퀵플렉서로 일하는 박상원(50·가명)씨는 "CLS가 퀵플렉서를 진짜 기계 부품처럼 생각한다.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일을 자꾸 시키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쿠팡이 자부하듯 정말 퀵플렉서의 노동조건은 2년 전 '과로사 방지 합의'로 설정된 기준보다 좋고 안전할까. 쿠팡과 택배노조 설명, 퀵플렉서 인터뷰, 실태조사 등에 기반해 따져봤다.
쿠팡 '고수익·휴가 보장' 말하지만
쿠팡은 퀵플렉서의 '좋은 근로여건'으로 △업계 대비 높은 수입 △대체 인력 확보를 통한 휴식 보장 △집하(접수된 택배를 수거)·분류 과정없이 배송에만 집중 가능한 환경 등을 꼽는다.
지난해 초 다른 택배회사에서 퀵플렉서로 넘어온 박씨는 "처음엔 1회전(배송 구역을 하루 한 번 도는 것)만 해도 되고, 쉬겠다고 하면 쿠팡친구(쿠팡 직고용 배송기사)가 투입돼서 눈치 안 보고 쉬는 게 큰 장점이었다"고 말했다. 전 회사에서는 쉬려면 '용차비'(대체 기사 비용) 20만~25만 원을 내야 했다.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었다. 박씨는 원래 일하던 회사 물량이 줄어 CLS로 옮겼다고 했다. 배달 건당 수수료를 받는 기사 입장에서 물량은 곧 소득 수준을 결정한다. CLS 물동량 점유율은 지난 1년 사이 2배(2022년 12.7%→올해 8월24.1%)로 급성장해 업계 2위로 우뚝 섰다.
실태조사를 봐도 퀵플렉서 월평균 순수입은 432만 원(한국노동사회연구소)으로, 택배 집배송기사 순수입 평균 348만 원(한국교통연구원)보다 꽤 높다. 쿠팡은 CLS 기사 평균 순수입이 '660만 원 내외'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박씨는 '높은 임금'만 보고 버티기에는 2년 사이 근로 환경이 악화했다고 했다. ①다회전(2회전·3회전)을 강제해 시간 압박이 커졌고 ②주말에도 배송량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해 휴식은 어려워졌고 ③쿠팡이 요구하는 이런 '서비스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언제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압박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① 무조건 지켜야 하는 배송 마감
쿠팡의 핵심 경쟁력은 '빠른 배송'과 '시간 엄수'다. 고객이 자정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배송하는 '새벽 도착 보장'이 대표적이다.
고객과의 약속은 원청인 쿠팡이 하지만 실제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 촌각을 다투며 일하는 것은 재하청을 받아 일하는 퀵플렉서다. 실시간으로 배송 현황이 모니터링돼 마감이 늦어질 것 같으면 수시로 재촉이 오고, 마감을 못 지킨 '던미스'가 반복되면 수수료 차감은 물론 일자리도 위태롭다.
퀵플렉서 야간조인 20대 후반 송용찬(가명)씨는 "쿠팡이 일반 택배보다 크고 무거운 짐이 적기는 하다"면서도 "사고가 나든 눈이 오든, 오전 7시 마감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다"고 했다.
게다가 쿠팡은 낮에 두 번, 밤에 세 번 물건을 보낸다. 고객이 늦게 주문했어도 마감시간에 맞춰 배송할 수 있게 쪼개서 보내는 것이다. 송씨가 오후 9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일하는 동안 캠프엔 △오후 9시 30분 △오전 1시 30분 △오전 3시 30분, 세 번 물량이 온다. 이에 따라 송씨도 캠프와 배송구역을 2.5번 왕복하고, 3번 짐 정리를 해가며 배송해야 한다. 시간에 쫓기는 이유다.
송씨는 "물량이 많은 날에는 너무 급해 밤에 잠자던 다른 동료를 깨워 지원 요청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폭우에 시야가 가리고, 땅이 얼어 위험해도 '7시 배송 완료' 때문에 기사들이 '죽음의 레이스'를 달린다"며 "기상이 나쁠 때라도 쿠팡이 적극적으로 마감시간을 완화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② 쿠팡은 1년 365일 '택배 없는 날'?
퀵플렉서들이 호소하는 또 다른 주요 문제는 '장시간 노동'과 '휴식권 부재'다.
쿠팡은 '퀵플렉서는 365일 택배 없는 날'이라고 홍보한다. 대리점과 계약할 때 충분한 대체 기사 확보를 조건으로 걸기 때문에 배송기사가 원할 때 쉴 수 있다는 것이다. 소규모 대리점에서 일하는 송씨는 그러나 "일반 택배는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웬만하면 고정으로 쉬고 공휴일도 쉬지만 쿠팡은 연중무휴"라며 "기사들 대부분이 주 6일 근무를 한다"고 했다. 백업기사가 충분해 언제든 쉬는 건 대형 대리점에서나 가능한 소리라는 것이다.
실제 근로시간 실태조사를 보면 여타 택배사나 CLS나 장시간 근로가 만연하다. 한국교통연구원 '택배 집배송기사 실태조사 보고서'(2022)를 보면 택배기사 312명의 월평균 운행일수는 25.1일(주 5.7시간), 일평균 근로시간은 10.3시간(집하 1.5시간+배송 6.7시간+기타 2.1시간)이었다.
쿠팡의 경우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올해 4월 실시한 퀵플렉서 227명 실태조사를 보면, 주 평균 5.9일 근무에 하루 일하는 시간은 △근로시간 9.8시간 △분류작업(통소분) 2.2시간 △프레시백(보냉백) 세척·반품 0.7시간이었다.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도 31.4%에 달했고, 식사·휴게시간은 평균 19.8분에 불과했다. 소득수준(5점 만점에 3.4점)은 만족 비율이 높았지만 휴일·휴가 사용(1.8점)은 12개 조사 항목 중 만족도가 가장 낮았던 이유다. 다만 CLS는 "주 5일 이하로 일하는 퀵플렉서 비중이 40%를 넘는다"고 설명한다.
퀵플렉서 주간조인 박씨는 "오전 7시에 캠프에서 1차로 물건 받고 9시까지 정리한 후에 배송을 시작하고, 오후 3시쯤 돌아와 2차 물량을 받고 보통 오후 8시, 물건이 많으면 9시쯤에 끝이 난다"고 했다. 대략 11~12시간 노동이다. "밥은 바쁘면 편의점 김밥 한 줄로 때우고, 보통 빨리 나오는 짜장면 같은 것을 먹는다"고 그는 말했다.
③ 고강도로 노동 통제하는 '수행률'
퀵플렉서들은 왜 시간에 쫓기고 주말에도 편히 못 쉴까. 365일 고객에게 빠른 배송, 정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CLS에서 '수행률'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휴무일 수행률 때문에 주말에 잘 못 쉬고, 보통 물량이 제일 적은 월요일에 하루 쉰다"고 했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CLS는 대리점과 계약할 때 '계약 해지에 관한 부속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신선식품 배송률 95% 미만' '휴무일 배송률 70% 미만' 등 해지 사유를 적시한다. 이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즉시 원 예약을 해지하거나 대리점 위탁 물량을 조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때 '신선식품 배송률 95%' 같은 기준을 수행률이라고 하며, 수행률을 못 맞춘 대리점에 대해 CLS가 배송구역을 회수(계약 해지)하는 것을 택배노조는 '클렌징'이라고 부른다. 클렌징이 되면 대리점주는 물론이고, 해당 구역을 배송하던 기사도 일자리를 잃게 되는 셈이다. 이 같은 조항과 관련해 지난 7월 참여연대는 CLS를 '대리점 갑질'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도 했다.
CLS는 이에 대해 "영업점(대리점)에 적정한 물량을 위탁하고 영업점 상황에 따라 영업점과 협의해 물량을 조정(적정노선 위탁협의)하는 제도"라고 설명하고, 택배노조는 "상시적 해고 위협에 시달리게 하는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 "쿠팡 업계 모범 보여야"
국감에서 홍 대표는 '과로사 방지 합의에 참여하라'는 국회의원 질의에 "CLS 배송 시스템은 일반 택배업계 시스템과 다르다"며 "참여하기는 적합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과로사 합의는 2021년 정부, 택배사, 택배노조 등이 참여한 노사정 기구에서 도출된 사회적 합의로 주 60시간 노동 제한, 오후 9시 이후 심야배송 제한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쿠팡이 택배업계 2위 선두주자로 성장한 만큼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퀵플렉서 실태조사를 한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CLS가 여타 택배회사와 비교할 때 임금은 좀 높지만 장시간 노동 등 나머지는 똑같이 열악한 상황"이라며 "쿠팡이 산업 리더에 가까운 위치에 오른 데다 과로 원인은 다른 곳과 차이가 없는데 사회적 합의에서 빠진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쿠팡이 배송기사에게 성과에 대한 큰 부담감을 주고 미달 시 구역을 회수하는 것은 부적절한 노동 행태"라며 "퀵플렉서가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직이라 현행 노동법 체계로는 보호가 어렵기에, CLS가 기존 합의에 동참하거나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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