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화질? 오히려 좋아"…'빈티지 디카'로 번진 MZ세대 '뉴트로' 열풍
뉴진스 '디토' 뮤비 이후 인기 폭발
'시티팝' 이어 MZ發 뉴트로 대표작 되나
대학생 노어진(23· 서울 동대문구)씨는 집에서 아버지가 쓰던 ‘빈티지(낡고 오래된) 디지털 카메라'(이하 '빈티지 디카')를 애용한다. 부모님이 찍어준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이 남아 있는 카메라를 보며 추억에 잠기는 것이다. 그는 지난 1~7월 유럽의 한 대학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 동안에도 현지 여행을 다니면서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했다. 하지만 노씨의 취향을 독특하다고만 할 수 없다. 과거에 대한 향수에서 출발한 ‘레트로(Retro·복고)’ 열풍이 빈티지 디카로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뉴트로(New Retro·신복고)’ 열풍이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들의 빈티지 디카 선호는 단순히 호기심으로만 볼 수 없을 정도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황학동 벼룩시장. 카메라 상점들에는 빈티지 디카를 사러 온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양성모(24 ·충남 천안시)씨는 “2~3달 전부터 관심이 있었고, 빈티지 디카 특유의 감성이 좋아서 한 대 사려고 한다”고 말했다. 중고 카메라 상점 ‘레트로타임’을 운영하는 전병수(54)씨는 “젊은 여성과 고등학생들이 빈티지 디카를 사러 많이 온다”며 “빈티지 디카가 유행이고 그중에서도 ‘셀카’(셀프카메라·자가촬영) 하기 쉬운 기기를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12월 걸그룹 ‘뉴진스’가 '디토(Ditto)' 뮤직비디오에 디지털 캠코더를 들고 나온 게 유행 확산의 불쏘시개가 됐다. 6㎜ 테이프를 이용한 빈티지 감성의 화면에 MZ세대는 열광했고 중고거래 시장에 올라왔던 해당 캠코더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특히 뉴진스는 이 뮤직비디오 뒷이야기를 담은 동영상에서 빈티지 디카로 셀카를 찍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동영상이 공개된 뒤 비슷한 화질이면서도 가격이 10만 원 안팎으로 저렴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생산된 빈티지 디카는 중고품 거래 시장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온라인 마켓에서도 빈티지 디카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국내 최대 규모 중고품 거래 인터넷 사이트 '번개장터'에 올라온 빈티지 디카 매물 관련 게시물은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1,685개에 달했다.
고화질 스마트폰 카메라나 최신 디지털 카메라에 비해 화질이 떨어지는 카메라를 젊은이들이 즐기는 이유는 과거의 향수 때문이다. 이른바 ‘감성’이 새록새록 돋는다는 것이다. 직장인 최영훈(33·서울 성북구)씨는 “원래 스마트폰 화질이 너무 좋아서 일부러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도 했었다”며 “빈티지 디카는 바로 디지털화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빈티지 디카로 사진을 찍으면 필름 카메라처럼 뿌연 화질로 향수를 자극하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곧바로 올릴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최근 카메라 필름 가격 폭등도 빈티지 디카 열풍과 관련이 있다.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중고 카메라 상점 ‘믿음사’를 운영하는 강병철씨는 “카메라 필름 가격이 뛰니까 사람들이 빈티지 디카로 넘어간 것 같다”며 “수입품인 카메라 필름이 원래 한 통에 3,500원이었는데 코로나19 이후 수입량이 줄어들며 현재는 2만 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빈티지 디카 예찬론자들은 최신 디카보다 아날로그 감성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매력에 빠졌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빈티지 디카로 커피와 케이크 사진을 찍고 있던 김서연(24)씨는 “최근 친구들이 빈티지 디카를 많이 구입해서 나도 자연스레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주 중고거래 앱을 통해 구입했다”며 “빈티지 디카는 아이폰에서 나올 수 없는 색감과 화질의 옛날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만난 안지윤(24·서울 강북구)씨도 “사진 밑에 날짜가 찍히는 등 빈티지 감성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들이 원하는 빈티지 감성에 가장 부합하는 것은 필름 카메라다. 하지만 빈티지 디카 유행은 '너무 불편한 것은 싫다'는 젊은이들의 심리를 반영한다. 벼룩시장에서 만난 김모(27)씨는 “빈티지 디카는 스마트폰보다 (화질이) 안 좋은 점이 좋다”면서도 "빈티지 디카는 불편한 필름 카메라보다 화질이 좋은 점은 장점”이라고 말했다. 소비 선택의 합리성, 이른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진 결과인 셈이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빈티지 디카 유행에 대해 “최근 ‘시티팝’ 유행같이 인간에게는 때로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향수가 본능처럼 나타난다"며 "그런 관점에서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과거의 것을 갖고 노는 새로운 형태의 복고인 이른바 '뉴트로' 현상으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기 세대가 가진 디지털 역량보다 재미있고 신선한 아날로그에 가까운 디지털 역량에 매력을 느끼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술 고도화에 따른 ‘디지털 피로감’이 이런 유행을 추동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디지털 피로감이 높아질 경우 과거로 회귀하고 싶어 하거나 과거를 감상적으로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nostalgia) 성향이 높아진다"(고진용, 여준상 ‘디지털 피로감이 레트로, 뉴트로 제품 태도에 미치는 영향: 노스탤지어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2022)는 분석도 있다. 디지털 피로감이 높아지면 과거지향적 소비심리 작동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문이림 인턴 기자 yirim@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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