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본 조선왕조실록 ‘110년 만의 귀향’

평창/허윤희 기자 2023. 11. 1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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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12일 개관
9일 강원도 평창군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서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취재진이 전시된 실록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전시장에 활짝 펼쳐진 ‘중종 실록’ 첫 장에 붉은 인장 두 개가 찍혀 있다. 하나는 도쿄제국대학 도서인, 다른 하나는 경성제국대학 도서장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무단 반출됐다가 돌아온 왕실 도서의 아픈 역사가 표지 면지와 첫 장에 또렷이 남았다.

강원도 평창 오대산 사고에 보관됐던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조의궤가 기나긴 타향살이를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1913년 실록이 일본에 반출된 지 110년 만의 귀향이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오대산 사고본 실록 75책과 의궤 82책을 보관·전시하는 국립 조선왕조실록 박물관을 12일 정식 개관한다며 9일 현장에서 언론 공개회를 열었다.

오대산사고본 국보 ‘성종실록’(1606년). 1913년 일본에 무단 반출된 지 110년 만에 귀향한 조선왕조실록이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은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 등 깊은 산속 4곳에 사고(史庫)를 만들어 주요 서적을 분산 보관했다. 이 중 오대산 사고에는 20세기 초까지 실록과 의궤를 포함해 총 4416책이 소장돼 있었다.(1909년 ‘오대산 사고 장서 목록’)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13년 조선왕조실록 788책 전량이 도쿄제국대학으로 반출됐고,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으로 상당량이 불에 탔다. 가까스로 화마를 피한 일부 실록은 이후 세 차례에 걸쳐 국내로 돌아왔다. 1932년 경성제국대학으로 27책이 이전됐고, 2006년 도쿄대에 남아 있던 47책이 서울대로 반환됐다. 2017년에는 일본 경매에 등장한 ‘효종 실록’ 1책을 국립고궁박물관이 추가로 사들였다.

9일 강원도 평창군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서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취재진이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왕조의궤 역시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오대산 사고본 의궤는 1922년 일본 궁내성(현 궁내청)으로 반출됐다가 2011년에야 43종 82책이 고국에 돌아왔다. 박수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궁내청에서 돌아온 오대산 사고본 의궤는 모두 19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고종·순종 대 의궤로, 일제가 조선 왕실을 일본 황실에 편입시켜 ‘왕공족실록(王公族實錄)’을 편찬하려 했기 때문”이라며 “의궤 반출 목적이 왕공족실록 편찬이었기 때문에 왕실 인물의 일생과 밀접한 기록, 즉 장례·책봉·혼인 등 생애 주기 관련 의례에 집중돼 있다”고 했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서 문을 여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전경. /문화재청

오대산사고본의 귀향은 지역 사회와 불교계의 오랜 염원이었다. 수년간 격론 끝에 지난해 국회의 관련 결의안까지 끌어냈고, 결국 기존 월정사 성보박물관이 운영해온 왕조실록·의궤 박물관을 국고를 들여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우선 공개하는 상설전시관에선 실록과 의궤의 편찬부터 환수까지의 역사를 실물과 영상, 그림, 사진으로 펼쳤다. 내년에는 기획 전시실, 실감형 영상관, 수장고 등을 보수·정비할 예정이다. 박수희 연구관은 “실록의 원본을 상시로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박물관”이라며 “이번 전시엔 실록 9점과 의궤 26점을 전시했는데 향후 유물 교체와 특별전을 통해 더 많은 원본을 다양하게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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