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겹겹이 쌓이는 극장의 시간
11월이 되자 내년 달력을 들추는 일이 잦아졌다. 극장의 시간은 한 해 동안 무대에 올릴 공연 라인업을 미리 구성하고 발표한 그대로 흘러간다. 2023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어느새 2024년의 공연들도 곁에 바짝 다가와 있는 듯하다.
개막과 폐막을 반복하다 보면 1년이라는 시간이 눈 깜박할 새 지나간다. 보통 장기 공연은 한두 달 정도지만, 연습과 준비 과정을 포함하면 제작 기간 전체로는 대략 4~5개월이 걸린다. 담당 공연이 두세 편이라면 개막과 폐막을 반복하다 한 해가 다 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탁상 달력을 들고 올해와 내년을 넘나들다 문득 극장이 갖는 이상한 시간을 생각했다. 현재의 나는 2023년과 2024년의 달력 사이를 오가며 업무 계획을 짜고 있다. 현재의 공연과 다가올 미래의 공연에 대한 준비와 계획이 지금 나의 시간 속으로 들어와 해가 다른 달력 사이를 펄럭이며 넘실댄다. 그리고 그 사이로 공연의 배경이 되는 무대의 시간이 슬그머니 끼어든다.
12월에는 뮤지컬 ‘딜쿠샤’가 개막한다.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와 영국인 메리 테일러 부부가 종로구 행촌동에 붉은색 벽돌로 지은 집 ‘딜쿠샤’를 소재로 하는 이 작품은 191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올겨울에 이 작품을 만날 관객들은 무대 위에 펼쳐지는 이 뮤지컬의 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객석의 시간과 무대의 시간이 만나고 서로 다른 층위를 켜켜이 쌓아 가는 것, 극장의 시간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데, 극장의 시간은 겹겹이 쌓인다. 겹겹이 쌓일수록 더 맛있는 페이스트리 빵처럼 극장의 시간도 서로 다른 층위를 쌓으며 의미를 키운다. 보통 사람의 일상 역시 대개 빛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때로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순간이 숨어 있다. 꾸준히 쌓아올려 바삭바삭 구워낸 시간의 힘일 것이다.
올해 마지막 공연과 내년 공연을 준비하며 1910년대를 품은 무대를 상상하는 지금, 켜켜이 쌓여 맛있게 구워질 또 다른 극장의 시간을 기다린다.
김지선·국립정동극장 제작기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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