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적은 유대인”...中 소셜미디어에 ‘히틀러’ 뜬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3. 11. 1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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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인민이 그리워해’ 등 게시물 봇물
‘중립 표방하던 中, 팔 편으로’ 분석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히틀러 관련 영상에 '엄지척' 이모티콘과 칭송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더우인 캡처

66만 팔로어를 보유한 더우인(중국판 틱톡) 역사 계정 ‘탕수랴오뎬스’는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7일까지 11개의 히틀러 소개 영상을 연속으로 올렸다. 그중 히틀러가 “우리의 적은 유대인”이라고 연설하는 장면을 재현한 영상에는 40만 개의 ‘좋아요’가 달렸다. 댓글은 “멋지다[精彩]” “말 잘했다”는 칭찬과 나치식 경례 사진 등으로 도배됐다. 베이징의 한 외국계 기업 직장인 리모(43)씨는 “페이스북에서는 ‘히틀러’라고만 써도 계정이 정지되는데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히틀러가 영웅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7일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 소셜미디어에 유대인을 집단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가 부각되고 있다. 더우인·웨이보(중국판 X)·비리비리(중국판 유튜브) 등에서는 지난달 말부터 히틀러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영상·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그를 칭송하는 댓글들도 검열 없이 게재됐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초기 중립을 표방하던 중국이 최근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고 팔레스타인 편에 서 중동을 끌어안는 모습을 보이면서 ‘반(反)유대’ 정서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더우인에서는 히틀러를 ‘샤오후즈(小胡子·미스터 수염)’라고 부르며 그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영상들이 최근 늘었다. 히틀러를 ‘유럽을 떨게 한 남자’라고 치켜세운 콘텐츠도 있다. 웨이보에서는 히틀러 관련 게시물에 “팔레스타인 인민들이 당신을 그리워한다” “지금 중동은 당신을 원한다” 등이 최대 추천수를 받은 인기 댓글이다.

이런 현상은 독일 사업가가 나치 치하의 유대인을 구출하는 내용을 담은 1993년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평가에도 영향을 줬다. 비리비리에선 한때 이 영화의 평점이 기존 9점대에서 7점대까지 내려갔고, 댓글 창에는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눈물을 흘렸는데, 지금 보니 뱀을 구한 농부 얘기”라는 글이 올라왔다. 반면 히틀러의 마지막 벙커 생활을 자세하게 묘사한 독일·이탈리아 영화 ‘다운폴’은 중국에서 다시 주목받으면서 평점이 올라갔다.

관영 매체들도 반유대 정서를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지난달 25일 미국 캘리포니아 리치먼드시의회에서 팔레스타인 지지자가 “우리는 과거 히틀러의 반대편에 섰다면 지금은 이스라엘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말했다고 상세히 보도했다. 선이 푸단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과거 나치의 탄압과 견주기도 했다. 후시진 환구시보 전 편집인은 웨이보에 “이스라엘이 지구를 태양계에서 쓸어버릴까 걱정된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중국에 만연한 반유대 정서는 중국이 과거 유대인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던 역사적 사실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만 명이 유럽의 박해를 피해 상하이와 하얼빈으로 이주했고 이 일대는 유대 국가 건설을 위한 후보 장소로 거론되기도 했다. 중국과 이스라엘은 1992년 수교 이후 경제 관계를 확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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