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TSMC 넘지 못할 산 아니다…‘황의 법칙’ 황창규 진단은

박종세 논설위원 2023. 11. 1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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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뉴스 읽기]
‘도쿄 선언’ 40년, K반도체 위기인가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미술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반도체 위기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1983년 삼성의 반도체 진출을 선언한 고(故)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이 나온 지 40년이다. 256M·1G D램 등 세계 최초 기록을 세우며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30년간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도체는 여전히 우리 수출의 20%를 담당하는 핵심 산업이다. 하지만 위기론이 나온다. 대만의 경쟁자 TSMC가 우리보다 앞서 달리고, 미·중 기술 분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도 고조돼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1990~2000년대 삼성 반도체엔 혁신이 넘쳤다.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그 시기 메모리 칩 성공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에게 반도체 현안을 물었다.

그래픽=백형선

◇TSMC 추격의 기회 보인다

-지금 우리 반도체는 위기인가.

“내가 삼성의 반도체를 맡았던 20년(1989~2009) 동안도 매일이 위기였다. 위기 아닌 적이 없었다. 당연히 실패의 과정도 거쳤다. 지금 위기론의 핵심은 대만 TSMC에 밀렸다는 것이다.”

-TSMC엔 왜 밀렸나.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는 다양한 기업들이 요구하는 사양에 맞춰 제품을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풍부한 IP(지식재산권)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소홀했다. 또 자동차부터 우주 산업에 이르는 다양한 기업들을 찾아 설명하고 기술을 세일즈해야 하는데 그 인력 양성이 덜 됐다. 인력을 양성하고, 고객 관계를 개선해야 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 상당히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 TSMC는 결코 넘지 못할 산이 아니다.”

-추격의 기회가 보이는가.

“최근 뉴스를 보면 TSMC가 사용하는 3차원 공정 기술인 핀펫(FinFet)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 기술을 최근 3나노 반도체 생산까지 적용했는데 좀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이 제품을 쓰는 아이폰15의 발열 문제가 이것과 연관이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삼성은 핀펫이 아닌 공정 난도가 높은 GAA(게이트 올 어라운드) 기술을 쓰는데 이를 더 확장하고, 구조를 더 다양하게 만들었다. 최첨단 제품인 2나노부터는 GAA 기술을 쓸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유리할 수 있다.”

-AI 시대엔 메모리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늘어나는 ‘황의 법칙’은 AI 발달로 더 지속될 것이다. 엔비디아가 쓰는 H100이라는 GPU(그래픽 처리 장치)는 AI 관련 서버당 8~16개씩 들어간다. 거기에 들어가는 메모리가 HBM이다. 이 시장은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큰 투자 결정은 오너가 할 수밖에 없다

-’칩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 교수는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의 성공 시점을 2008년 금융 위기 때로 꼽았다. 이때 공격적인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삼성은 그해에 이건희 회장이 상속 문제 등으로 특검의 조사를 받고 뒤로 물러났다. 오너의 부재가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큰 투자 결정엔 오너의 결단이 절대적이다. 예를 들어 2000년에 삼성 반도체 메모리 사업을 맡았을 때 플래시 메모리 시장 점유율이 4.6%에 불과했다. 특히 낸드플래시에선 도시바가 기술을 선도하며 시장점유율 45%였다. 그런데 도시바가 삼성전자와 함께 조인트 벤처를 만들자고 했는데 거절했다. 플래시 메모리 독자 사업을 선택했다. 이건희 회장이 도쿄로 나를 불러 얘기를 들은 뒤 결단했다. 메모리 부문 사업부장인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그룹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는 큰 결정은 오너가 할 수밖에 없다. 이 결정으로 1년 반 만에 낸드 플래시 1위 도시바와 2위 삼성의 위치가 바뀌었다.”

-이재용 회장도 그런 짐을 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이병철 회장은 직접 대면하지 못했지만, 인재를 중요시하고 믿을 만하면 확실히 위임하는 완벽주의자였다. 이건희 회장은 인재 제일주의라고 하는 이병철 회장의 철학을 실현하신 분이다. 이재용 회장 역시 아버지를 닮았다. 리더로서 위임할 것은 과감하게 위임하고 내면에서 불꽃이 튈 정도로 활기 넘치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경영자들도 좀 도전적으로 나서고, 자기 소신이 확실하다면 관철시킬 수 있는 용기도 가져야 한다.”

-삼성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회사니까 상관없다는 얘기도 한다.

“내가 있을 때 임원만 200명이고, 반도체 과장만 수천 명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맡고 있는 과장이든 부장이든 직보하라고 했다. 임원한테 우선 보고하고 그다음에 부사장한테 보고하면 이게 다 가공이 돼서 온다. 사다리를 없애고 직접 보고를 하는 수평 문화가 중요하다. 많은 대기업들이 대기업 병에 걸려 있다. 부서가 쪼개져있고, 협업이 안 된다.”

◇20년 전 미국은 통상, 일본은 장비로 괴롭혔다

-미·중 기술 분쟁으로 중국 내 삼성, SK 공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미국이 우리의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하면서 장비 반입 문제는 일단 풀렸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인데, 우리만 갖고 있는 제품과 기술이 있으면 아무리 미·중이 싸운다고 하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다. 20년 전에도 우리 반도체가 약진하니까 미국과 일본이 견제했다. 미국 반도체업계가 아우성치자 미국 정부가 반덤핑으로 걸었다. 이것 때문에 몇 년을 고생했다. 일본은 장비업체가 핵심 장비 공급을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일본의 반도체 장비 비율이 50% 수준으로 막강했다. 일본 총무성이 나서 장비 수출을 막아 6개월간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만 갖고 있는 확실한 제품이 없으면 미·중 간섭은 계속될 것이다.”

-일본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반도체 부활은 성공할까.

“일본이 반도체 메모리에서 손을 놓은 지 20년 됐다. 그때 활동했던 회사들 대부분이 없어지고 일부만 합병해서 남았다. 그런데 20년 공백이면 인력이 문제가 된다. 20년 동안 노하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반도체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오너가 적기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타이밍 사업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미·중 기술 분쟁이 결국 우리 기업에 도움 된 것 아닌가.

“미·중 갈등이 도움이 된 것 맞는다. 하지만 전제가 필요하다. 우리가 자신 있고 준비돼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부지리도 생길 수 없다.”

-MB 시절 지식경제 R&D 전략기획단 단장(국가 CTO·최고기술책임자)을 했다. 우리 R&D 예산의 문제가 뭔가.

“국가 예산이 부서별로 심지어 과별로 다 쪼개져 있다. 세상은 융합 시대로 돌아간다. 융합해 어떤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전략을 짜야 하는데 예산이 쪼개져 들어온다. 시너지가 날 전략을 짤 사람이 있어야 한다. 국가 CTO가 필요하다고 본다. 전권을 갖고 결정해서 비효율적인 예산 지출을 바꿔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키울 게 얼마나 많은가. 신약 개발도 우리에게 기회이고, 의료도 세계 톱 수준이다. IT와 산업 간 융합을 통해 국가 먹거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도쿄 선언’ 뒤엔 ‘한·미·일 반도체 삼국지’가 있다

반도체 진출을 놓고 고심하던 이병철 회장은 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누가 뭐래도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른바 ‘2·8 도쿄 선언’이다.

삼성과 나라의 운명을 바꾼 이 결정 뒤엔 ‘한·미·일 반도체 삼국지’가 있다. 메모리 칩 분야 최고로 올라선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훨씬 저렴한 공급원으로 한국을 주목했다. 인텔의 공동 창업자 밥 노이스는 “한국인들이 일본 생산자보다 더 저가에 판매할 테니 일본이 덤핑 전략을 쓰더라도 세계 D램 시장을 독점하는 일은 불가능하며, 일본 칩 제조사들은 치명적인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은 D램 시장을 제공하고, 기술도 전수했다. 이 회장은 현금이 부족했던 메모리 칩 스타트업 미국 마이크론에 접근해 64K D램용 설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무어의 법칙’으로 유명한 고든 무어는 “가치 있는 기술을 쉽게 넘겨준다”고 걱정했으나 이미 D램은 미국 내에서 가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삼성은 1983년 마이크론의 기술을 이용해 64K D램 상용화에 성공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당시 삼성이 개발한 D램은 마이크론의 기술을 재조합하는 일종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에 가까웠다”며 “하지만 마이크론의 예상보다 개발 기간을 3분의 1 이상 앞당겼다는 것은 큰 성과였다”고 했다.

‘칩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는 “삼성의 반도체 투자는 한국 정부의 4억달러 투자와 은행의 추가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한 한국적 시스템의 산물이기도 하다”고 평가한다. 삼성의 반도체 성공 신화는 기업가의 도전 정신, 뛰어난 인재, 국가의 지원, 글로벌 역학의 변화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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