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목적으로서 인간과 수단으로서 인간

유일선 한국해양대 교수 2023. 11.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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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임금 깎으려 고용·직업 차별화 금지한 ILO 탈퇴하겠다는 발상…노동권 의미 되새겨봐야
유일선 한국해양대 교수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운명이 부과한 제한된 시간 범위에서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 필요한 자원도 유한하다. 일반적으로 자원은 인간이 제공하는 노동, 인간이 만들어낸 생산수단인 자본, 자연이 제공하는 자연자원으로 분류된다. 인간은 사는 동안 이러한 한정된 자원 범위에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

문제는 인간의 욕구는 무한한데 자원은 유한하다는 것이다. 인류는 이런 비대칭 구조가 야기하는 갈등과 혼란을 최소화하고 유한한 자원을 가지고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자원배분의 여러 방법을 모색해왔다. 하나는 인간의 욕구를 줄이는 것이다. 자원배분 과정에서 사람들 간 이해관계 상충 문제는 오랜 경험에 바탕을 둔 윤리 도덕 관습(법) 등으로 조정됐다. 특히 타인에 대한 신체적 위협이나 명예 훼손, 재산 침탈 등 위해를 가하는 욕구 충족은 법적 강제성으로 금지했다. 이처럼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성을 바탕으로 한정된 자원에 맞추어 욕구를 절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정된 자원을 잘 활용해 더 많은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최소 자원을 투입해 상품으로 전환한 다음 그것을 통해 인간의 욕구를 최대화한다.

어떤 자원배분 방식이든 욕구와 자원의 비대칭적 구조 아래서 누군가는 사회적 차원에서 실현할 욕구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의사결정의 주체로서 목적이 되고, 어떤 사람은 노동을 제공하는 자원이 됨으로써 수단화된다.

그러면 어떤 인간은 목적이 되고 또는 수단이 되는가? 그 기준은 자원배분에 대한 의사결정권 여부에 달려 있다. 과거 전제군주 시대에는 왕이 모든 의사결정권을 행사했다. 그가 사회(국가) 유지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규범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욕구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것에 맞춰 한정된 자원을 배분한다. 이때 왕이 제시한 사회적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 왕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수단으로 동원되어야 한다. 오직 왕만이 목적이고 모든 백성이 수단인 사회에서 왕이 백성들의 다양한 가치나 선호를 신중히 고려해 사회적 욕구의 우선순위를 정하면 몰라도 그렇지 않는 경우 무시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대부분 왕은 자신의 욕구를 사회적 욕구로 대체했고, 신하들은 왕의 욕구를 자신의 욕구로 대체하기 위해 끊임없는 권력투쟁을 이어갔다. 그 결과 백성은 굶주리고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망국의 길로 나아갔다.

18세기 시민혁명을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이 자원배분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갖는 근대 국민국가가 열렸다. 이제 모든 개인에게 자신이 소유한 자원의 재산권이 인정되고 그것을 가지고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자신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자유가 부여되었다. 또한 모든 개인에게 사회적 자원배분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가 인정됐다. 이때 개인적 자원배분에는 본질적으로 다양성이 존재하고, 사회적 자원배분은 사회구성원이 동의하거나 수용해야 하는 동질성을 지향하므로 양자 간 이해상충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이런 양자 간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따라 자원배분 체제가 달라진다. 사회적 동질성을 명분으로 소수집단이 사회적 자원배분을 결정하면 개인적 자원배분의 다양성이 무시되므로 다수의 사람은 수단으로 전락한다. 근대 역사에서 좌익의 전체주의, 우익의 파시즘과 제국주의가 수많은 인간을 생산수단과 전쟁수단으로 활용했고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우리는 안다. 이제 개인이 사회적 자원배분에 참여해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를 보자. 즉 개인적 자원배분의 다양성을 통합하는 형태의 사회적 자원배분을 창출한다. 개인의 자율적 참여를 전제로 하는 시장경쟁과 대의 민주주의 형태의 자원배분 체계가 대표적인 예다. 이런 체계 아래서는 인간을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도 대우하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이 작동될 것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민생문제 해결 방안으로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과 이것이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 중 ‘고용과 직업상 차별금지’(111호)에 어긋나므로 ILO의 탈퇴를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노동은 인간을 수단화하는 직접적 요인이기 때문에 ILO는 강제노동금지,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 단결권, 단체교섭권과 파업권, 남녀 임금차별금지, 아동노동 폐지 등 8개의 핵심협약을 통해 자유와 평등이 인간이 목적으로 존립하는 중요한 권리임을 천명하고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이 7번째 계명인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에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는 말을 덧붙여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며 권력을 독차지하는 모습이 현실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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