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재원의 정치평설] 진짜 ‘영남 스타’가 되려면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 2023. 11.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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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쏘아 올린 ‘영남 스타’의 험지 출마론 파장이 만만찮다. 보수의 정치적 텃밭에서 편하게 선수를 쌓은 중진들의 자기희생 요구에 여론은 박수를 보냈다. 이를 업고 윤석열 대통령 측근과 지도부의 불출마 결단까지 압박하고 나섰다.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명되면서 쉽사리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형성되는 느낌이다. 물론 저항과 반발 기류도 감지된다. 그래서 태산명동 서일필(太山鳴動 鼠一匹). “희생과 결단”, 정치적 수사만 난무하다 흐지부지 끝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외자의 관점에서 정작 궁금한 대목은 따로 있다. ‘영남 정치권에 스타가 있기는 한가’하는 의문이다. 아마도 인 위원장은 안방에서 다진 정치력을 밑천 삼아 험지에서 떡하니 당선되면 그게 스타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사실 이것조차 말처럼 쉽지 않은 게 우리 정치 현실이다. 기껏 떠올릴 만한 성공 케이스는 2명 정도다. 울산 동구 5선 뒤 서울 동작에서 당선된 정몽준과 전북 무주 진안 장수에서 4선 뒤 서울 종로에서 금배지를 딴 정세균이 그 주인공. 영남 지역구를 과감히 버리고 수도권에 도전한 뒤 당선되면 나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스타’ 타이틀을 쉽게 붙여줄 수 있을까. 정몽준과 정세균, 두 사람은 이후 각각 여당 대표와 국회의장으로 정치적 성취를 이어갔다. 그러나 누구도 둘을 ‘스타’로 부르지도, 기억하지도 않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사는 영남 스타가 만든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민시대’ 김영삼(YS), ‘바보’ 노무현, ‘선거의 여왕’ 박근혜, ‘백의종군’ 문재인. 모두 영남지역 국회의원을 지냈고, 똑같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현행 헌법 체제가 배출한 8명의 대통령 중 무려 절반을 차지한다. 단순히 이들이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스타라고 하는 건 아니다. 실제 대통령직 수행에 대해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등 정치적 논란이 없지 않다. 그러나 대권 반열에 오르기까지 이들이 보여준 정치는 많은 국민에게 깊고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들은 영남 지역구를 버리고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지 않았다. 다소간 예외가 있긴 하다. 노무현의 경우 1998년 서울 종로 보선에서 당선된 적이 있기 때문. 하지만 당시 집권당 후보로 강세지역에 ‘낙하산’으로 출마해 험지 도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다 다음 선거 땐 바로 부산으로 ‘U턴’했다. 그렇다면 정치 안방을 버리고 무작정 서울 출마가 정치적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들을 스타로 키운 건 따로 있었다.

먼저 굴하지 않는 용기다. 군사독재에 맞선 YS의 투쟁은 의원직을 넘어 목숨까지 내건 지난한 싸움이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민주화 선봉을 이끌어 마침내 ‘군정 종식’을 이루고 문민정부를 탄생시켰다.

민주화 시대, 노무현은 바보 같은 우직함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역구도 벽을 깨기 위해 낙선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신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를 얻었다. 계파 간 줄 세우기로 진행, 절대적으로 불리한 경선에 단기필마로 뛰어들었다. 결국 ‘광주의 기적’을 일궜다.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폭망 직전인 당의 구원투수로 나선 박근혜. ‘호화당사’를 국가에 전격 헌납하고 간판만 떼 ‘천막당사’로 향하던 그의 모습에 국민 분노가 누그러졌다.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으로 또다시 당이 위기에 처하자 그가 꺼낸 카드는 ‘경제민주화’. 정치적 유연성을 통한 중도 외연 확장이라는 본보기를 만들었다.

‘주군’ 노무현의 비극적 사건 앞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문재인. 고사 끝에 끌려 나온 대선에서의 패배에 이어 당 분열이라는 최대 위기 속에서도 그 의연함이 빛을 발했다. 발끈하기보다 인내하고, 무엇보다 ‘선당후사’를 위해 자기를 던져 민주당도, 그 자신도 구했다.

요즘 정치권, 특히 영남 지역을 들여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던 역동성도,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그 목마름도 다 말라버린 듯하다. 대신 지역 공동화(空洞化)를 넘어 지방소멸 얘기만 유령처럼 떠돈다. 그나마 대안으로 보였던 ‘부울경 메가시티’조차 ‘밥그릇 싸움’ 탓에 걷어차 버렸다. 오히려 수도권 집중을 부채질할 ‘서울 메가시티’에 울산과 부산 의원이 총대를 멨다. 여당이 용산 대통령실 ‘출장소’로 전락해도 영남 의원 누구 하나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느닷없는 홍범도 흉상 철거 등 철지난 ‘색깔론’이 판쳐도 대통령 눈치를 보는 건지 이마저도 모르쇠다. 지역의 민주당도 마찬가지. 누누이 공언했던 불체포특권 약속을 뭉갠 당 대표의 정치적 식언에도 지역 의원들은 묵언수행 중이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정치권 스타도 하늘에서 그저 뚝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안방을 버리고 수도권 험지로 간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정치인이라면 모름지기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영남의 선배 스타를 키웠던 ‘용기 신념 진솔 헌신’의 실천 말이다. 이런 노력의 진정성이 통해야 어디 가서 정치하든 성공할 수 있다. 그런 감동의 정치가 있어야 민주주의도, 대한민국도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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