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이런 성공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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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의 규슈올레길을 걸으러 갔다.
규슈올레길은 제주올레길을 일본에 수출한 길이다.
그 길은 제주올레길처럼 전체 둘레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규슈의 유명한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 즉 작은 마을의 길을 이어 트레킹 코스를 만든 것이다.
우리는 단지 좋은 길을 걷는 여행을 하러 일본에 갔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들고 이어놓은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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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의 규슈올레길을 걸으러 갔다. 규슈올레길은 제주올레길을 일본에 수출한 길이다. 그 길은 제주올레길처럼 전체 둘레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규슈의 유명한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 즉 작은 마을의 길을 이어 트레킹 코스를 만든 것이다. 지금 규슈에는 올레길이 총 18개가 있는데 이 중 우리는 아마쿠사란 곳을 걸었다. 아마쿠사는 작은 섬마을로 그 마을의 소로길과 숲길을 지나 바닷가로 다시 나오는 길이다.
바닷가를 걷기 시작하는데 제주올레 일본지사장이 갑자기 바닷물에 쓸려내려온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일행도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 후 지사장은 "우리 눈에 보이는 큰 플라스틱 쓰레기만 줍는 게 어때요"라고 제의했다. 내가 모시고 간 트레커들이 좋다고 했지만 그 순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우리나라 쓰레기도 아니고 왜 우리가 일본의 쓰레기를 줍는다는 말인가. 특히 오염수 때문에 민감한 시기에 그것도 일본의 쓰레기를 내가 모시고 간 트레커들에게?
내 표정이 달라진 것을 눈치챈 듯 멋쩍어 하던 지사장은 아무 말 안 하고 혼자 줍기 시작했는데 같이 간 일행은 "바다의 쓰레기를 줍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이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서 플로깅에 동참했다.
나는 그때까지 화를 삭이지 못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동참했다. 쓰레기는 금세 한 무더기가 됐고 모두가 마을로 가는 큰 오르막길을 무거운 짐을 들고 올랐다. 심지어 미국 국적을 가진 분은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들고 올랐다.
모두의 환한 표정에 왜 일본 쓰레기를 한국 사람이 줍느냐고 한 내가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마을에 도착하자 마을 이장님이 조그만 트럭을 몰고 나와 거기에 쓰레기를 버리라고 했고 우리 일행 모두를 본인의 집에 초대했다. 도착하니 이미 이장 사모님이 준비해놓은 시원한 녹차와 커피 그리고 그 지역에서 재배한 귤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과자를 먹고 가라고 하셨다. 후한 대접에 우리 일행이 감탄했고 이장님도 한국 사람들이 자기네 어촌마을의 쓰레기를 주워준 것에 대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미국 국적의 분이 모두에게 시 한 편을 읽어주고 싶다고 했다. 시의 제목은 랄프 왈도 에머슨의 '무엇이 성공인가'(What is Sucess)였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성공은 자주 많이 웃고 지혜로운 사람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중략).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인해 한 사람의 삶이라도 풍요로워지는 것이란 내용이었고 마지막엔 '이러한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This is to have succeeded)라는 내용이다.
그 시를 듣는 내내 모든 일행은 낮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는지 입가에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너무 좁은 생각에 갇혀 있었고 이기적인 생각을 한 것 같아 시를 듣는 내내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모든 일행에게 큰소리로 사과했고 일본 규슈올레 지사장에게는 정말 속이 좁았다며 한 번 더 사과했다.
우리는 단지 좋은 길을 걷는 여행을 하러 일본에 갔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들고 이어놓은 길을 걸었다. 길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주우며 걸었고 그 이유로 그 곳의 사람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한 마음을 받았다. 그리고 먼 훗날일지 몰라도 한 사람의 삶이라도 풍요로워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최소한 하루는 성공한 날이 아니었을까.
이원근 승우여행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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