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입으로 읽는 시인 할머니의 ‘ 꽃나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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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벌들이 남겨둔 한 장의 편지에는 과연 어떤 글이 적혀 있을까.
시인은 겨울나무 둥치를 한 그루씩 안아보고 만져보며 속을 헤아렸다.
김제곤 아동문학평론가는 이 시인이 그린 나무의 세계에 대해 "다정다감하고 일방의 헌신도, 착취도 없다. 나무의 덕성과 사랑은 물론 나무를 향한 유대와 사랑도 함께 그려진다"며 "나무가 주는 기쁨만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결핍과 슬픔도 나눈다. 나무에서 진정한 사랑을 길어낸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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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시절 숲 거닐며 집필
나무들 이야기 동심으로 재해석
다채로운 계절감 속 자연 묘사
작고 여린 것들의 생명력 조명
“향기로운 답장 놓치지 않기를”
집 나간 벌들이 남겨둔 한 장의 편지에는 과연 어떤 글이 적혀 있을까. 계수나무에서 캐러멜 향기가 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굴참나무 아래에는 왜 산수유 열매 씨가 떨어져 있을까.
사람들과 거리를 둬야 했던 시간, ‘이화주 시인 할머니’는 숲과 가까워졌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수목원을 찾았다.
시인은 겨울나무 둥치를 한 그루씩 안아보고 만져보며 속을 헤아렸다. 하룻밤 사이 비바람에 몽땅 잎을 잃은 버즘나무에게 ‘나무도 슬플 땐 우는지’ 묻기도 했다. 백 가지 넘는 나무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자 나무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춘천에서 활동하는 이화주 시인(아동문학가)의 새 시집 ‘숲속 나무 학교’는 이렇게 숲 속을 거닐며 듣게 된 나무의 비밀들을 독자들에게 속삭여 주는 책이다. 수록 시 50편 중 37편에 다양한 나무들이 등장한다.
봄에는 고로쇠 나무 속에 사는 물지게꾼 할아버지의 덩실덩실 춤사위를 보고, 여름에는 온통 초록인 여름산 속에 울려퍼지는 아기 열매들의 힘차고 환한 대답을 듣는다.
가을에는 이렇게 걱정한다. “여름내/ 열매를 키운 손, 손, 손, 손을 //아무 생각 없이/ 밟으며 걸어도 되나?(시 ‘낙엽을 밟으며’ 전문)”하고.
그리고 겨울에는 ‘하늘의 커다란 귀’를 생각하며 사색에 잠겼다. 나무의 소리 없는 기도를 들어주는 귀다.
어린 독자들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으로 쓴 ‘시인의 말’을 읽고 나면 곧 잎을 떨구고 추위를 오롯이 마주해야 하는 나무들의 오늘과 내일을 응원하게 된다.
이 시인은 독자들에게 다정하게 당부한다. “봄날 가지마다 피어나던 나무의 향기로운 답장을 어린 친구들이 놓치지 않고 읽어보았으면 한다”고.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친구인 나무는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놓치면, 나무의 아름다움은 바로 비밀이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이화주 시인은 2010년 춘천교대 부설초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41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친 후 더 활발히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아동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등을 받았고 ‘손바닥 편지’, ‘나는 생각중이야’ 등 여러 시집과 그림동화를 냈다. 여러 편의 동시가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리기도 했다. 이번 시집 속 그림은 성연 작가가 그렸다.
김제곤 아동문학평론가는 이 시인이 그린 나무의 세계에 대해 “다정다감하고 일방의 헌신도, 착취도 없다. 나무의 덕성과 사랑은 물론 나무를 향한 유대와 사랑도 함께 그려진다”며 “나무가 주는 기쁨만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결핍과 슬픔도 나눈다. 나무에서 진정한 사랑을 길어낸다”고 평했다. 김 평론가는 “작고 여린 것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귀함, 생명력에 눈을 열고 귀를 기울인 시인”이라며 “어려운 구절이나 비튼 표현이 없어 술술 읽히고 맑고 투명한만큼 정갈한 긴장미가 느껴진다”고 이화주 시세계의 미학을 설명했다.
책을 덮을 때 겨울 숲에 노래 편지를 띄웠던 ‘어린 새’의 눈망울이 아른거린다. 봄날, 답장으로 받은 꽃편지를 그만 꼴깍 삼켜 버린 어린 새.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새를 시인 할머니는 따뜻하게 토닥인다. “괜찮단다. 꽃 편지는 눈으로, 코로, 입으로 읽는 거란다.”
김여진 beatl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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