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도둑 도(盜)’의 원래 뜻은 ‘체제를 부정한 자’였다

2023. 11.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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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의 한 장면. /쇼박스

신문 기사에서 괄호 안에 한자를 표기하다 보면 가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분식(粉飾)이나 분장(粉粧)이란 말에 나오는 ‘가루 분(粉)’이란 말을 보고 ‘아주 오래전에는 화장품을 쌀가루로 만들었겠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자의 세계’라는 책을 쓴 일본 학자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1910~2006)는 ‘일본 현대 최후의 석학’으로 불렸던 한문학자로 ‘시라카와 문자학’이라는 일가(一家)를 이뤄 낸 인물입니다. 전통적인 한자 연구의 틀에 고고학·민속학의 최신 성과를 반영하며 글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죠.

한자의 기원을 심층적으로 추적했다는 것은 곧 동양 문명의 원류(源流)에 대한 추적이었습니다. 한자란 원래 상형문자인데, 그것은 사물의 모양을 본뜬 글자라는 말입니다. 문명의 탄생과 동시에 생겨난 문자는 그 배후에 오랜 세월에 걸친 ‘원시’의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글자 속에는 그 비밀의 열쇠가 담겨 있다는 것이 됩니다.

‘가방끈이 길다’는 속어에 어울리는 단어, ‘글월 문(文)’자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밝힌 부분은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문화(文化)’ ‘문명(文明)’ ‘문자(文字)’에 모두 등장하는 문(文)이란 글자를 중국 문자학의 고전인 ‘설문해자’는 ‘교차된 획’이라고 기록합니다. 이 글자 아랫부분 ‘X’의 형태를 말하는 것이죠.

갑골문 등에서 이 글자의 형태를 찾아 보면, 사람이 정면으로 서 있는 형상으로서 가슴 부분이 특별히 크게 표시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슴에는 또다시 ‘V’나 ‘X’의 형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가슴에 새겨진 무늬’를 표현한 것이었죠. 훗날 동양 문화의 이념과 전통을 표현하는 위대한 글자가 된 ‘문(文)’자는 바로 ‘문신’에서 비롯됐다는 얘깁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문명(文明)의 ‘문(文)’자는 문신에 비롯됐다.”

원류를 따지고 보면, 문신을 새긴 사람을 꼭 야만적이라거나 반문명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갑골문.

다음 얘기는 좀 섬뜩하기도 한데, 원시 종교의 흔적이 지금도 한자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씨(氏)’라는 글자를 보시죠. 이 글자는 원래 ‘찌르고 자르는 도구’를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제사 때 이 도구로 희생물을 갈라서 의례에 사용했는데, 이때 희생물의 피를 마시고 맹서하는 혈맹(血盟)의 의식이 생겨났습니다. 이제 세월이 흐르자 씨(氏)는 혈연관계를 의미하는 글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서양에서 사냥할 때 쓰던 삼지창이나 칼이 아직도 식탁 위에 변형된 형태로 남아있는 데 비해, 동양에선 글자에 그런 흔적이 남아 있는 셈입니다.

좀더 끔찍한 형상을 표현한 글자로는 ‘놓을 방(放)’자가 있다고 합니다. 이 글자는 나뭇가지에 걸쳐 놓은 시체를 때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원시시대의 주술로서 사악한 영을 물리치는 방법이었다는 겁니다.

더 섬뜩한 얘기도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긴 노인의 시체를 걸쳐 놓고 때리는 글자는 ‘거만할 오(敖)’였다고 합니다. 그런 행위가 적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모욕으로 비쳐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자리 변(邊)’이란 글자는 종교가 달라지는 지역의 경계에서 ‘자른 머리를 올려 놓고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어째 글자가 좀 복잡하더라니, 사연이 있었던 것이죠.

중학교 때 학교에서 처음 한자를 배우기 시작할 때, 학교 선생님은 ‘언어(言語)’는 ‘말씀 언(言)’과 ‘말씀 어(語)’로 이뤄진 단어라고 가르쳤습니다. 둘 다 말씀이라면 도대체 언과 어는 무슨 차이입니까? 선생님은 분명히 뭐라고 답변을 했을 테지만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 시라카와는 이렇게 말합니다. “‘언(言)’은 기도이자 자기 맹세이며 신에 대한 서약이었고, 자신은 깨끗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동시에 상대방에게 대항하는 공격적인 말이었다. 반대로 ‘어(語)’는 방어적인 말이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언(言)’은 오펜시브 랭귀지(offensive language), ‘어(語)’는 디펜시브 랭귀지(difensive language)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갑골문을 사용했던 은나라(상나라)의 마지막 군주 주왕과 달기의 이야기를 그린 삽화.

사실 지명도 마찬가진데, 어떤 글자에 관해 후대에 만들어진 기원에 관한 속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녘 동(東)이란 글자에 대해 우리는 보통 해[日]가 나무[木] 가운데 걸쳐 있는 모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의 자형은 위와 아래를 묶은 주머니 모양입니다. 원래 동(東)은 ‘주머니’란 뜻이었던 겁니다. 주머니가 동쪽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방위를 구체적으로 나타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단지 발음이 같은 글자를 빌려 썼을 뿐이라는 얘깁니다.

한자는 중국 글자고, 이건 단지 중국에 국한된 얘기 아닌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라카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자가 동아시아권에서 사용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같은 종류의 생활이 그곳에 있었다는 의미다. 문자가 품고 있는 원시체험이란 것은 동아시아 전체의 고대 문화를 규명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시라카와의 연구 중에서 제가 보기에 가장 흥미로운 글자에 대한 이야깁니다.

‘도둑 도(盜)’는 원래 좀도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자체를 부정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이건 무슨 얘길까요? ‘도(盜)’자 밑에 있는 ‘그릇 명(皿)’은 원래 맹세의 문서를 담는 그릇이었습니다. 이 세라는 것은 씨족 성원으로서의 맹약이었습니다. 그럼 ‘명(皿)’자 위에 물[水]을 끼얹은 ‘도(盜)’란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릇을 더럽히고 씨족의 유대를 포기한 일종의 정치범이며, 신의 뜻에 의해 체제로부터 추방돼야 할 자였다는 것입니다.

도척을 그린 현대의 삽화.

춘추시대 노나라에서 무리 9000명을 이끌고 횡행하며 공격과 약탈을 서슴지 않았던 조폭 두목의 별명이 도척(盜척<足+石>)이었던 것이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도척은 이런 헛소리까지 했다는 얘기가 ‘장자(莊子)’ 거협편에 전해집니다.

“도둑질을 하려고 남의 집에 들어갈 때 뭐가 있는지 곧바로 알아맞히는 것을 성(聖)이라 하고, 남보다 앞장서서 들어가는 것을 용(勇)이라 하며, 남보다 나중에 나오는 것을 의(義)라 하고, 도둑질을 해도 차질이 없는 곳을 터는 곳을 지(智)라고 하며, 훔친 것을 정당하게 나누는 것을 인(仁) 이라고 한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못하고 큰 도적이 된 자는 없다.” 물론 누군가(아마도 ‘장자’의 저자가) 웃자고 만들어 낸 말일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지금 거대한 비리를 통해 나라 전체를 뒤집어 엎으려고 기도하고 획책했던 자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구성원의 신의를 저버렸고 유대에 반하는 일을 했으며 사익을 위해 체제의 이익에 어긋나는 일을 했고, 그런 일을 통해 국가에 해를 끼쳤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이 체제의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주장하는 자.’ 정말로 이런 자가 존재한다면 그를 바로 도척에 못지않은 ‘도(盜)’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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