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표만 좇지 말고 진리 찾아야… 日나카에의 경고[박훈 한국인이 본 일본사]
19세기 말 민주주의 수용한 일본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인 것은 맞지만,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에 대해 깊은 성찰을 쌓아왔다고 하긴 어렵다. 광복 후 그저 미국 따라 받아들였을 뿐이라는 것이 솔직한 말일 것이다. 그후 80년간 민주주의는 마치 성리학의 ‘대의(大義)’처럼 그저 떠받들어졌을 뿐, 지적 탐구와 비판의 과녁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긴 했지만, 시원한 물 한잔 마시고 맨 정신으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철학·정치학·역사학적으로 들여다본 적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정당은 진리를 탐구하는 곳
작금 우리의 정당들은 어떤가. 공지 따위 탐색하는 의원은 거의 없는 듯하며 여론조사, 팬덤 지지자 추종을 민주주의처럼 받아들인다. 상대 당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기는커녕 내가 내심 말하려 했던 것도 상대가 먼저 표명하면 표변하며 공격해댄다. ‘진리(공지)를 중시하는 학파와 같은 정당’까진 아니더라도, ‘토의’ 중에 코인 투자를 탐구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민주주의의 위기’ 보완책 필요
나카에가 생각한 대의정치란 여러 소인의 가슴속(胸腹)에 있는 ‘사리사욕’의 덩어리를 국회라는 큰 냄비에서 끓이고 다시 끓여, 구름이 되고 안개가 돼 푸른 층루(層樓)인 내각에까지 밀어 올리는(冲上) 것이다(‘군자소인’). 그럴 때 국회는 국가의 ‘일대뇌수(一大腦髓)’가 된다. 여론에 추종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여론에 기초하되, 숙고와 숙의(熟議)를 거듭해 공지를 도출해내는, 신체의 뇌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그후 일본정치는 국민들의 여론수렴, 의원들 간의 숙의, 이해타산을 조정한 공공성에 기초한 정책 결정, 그 어디에서도 흡족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집권당은 80년이 흘러도 제대로 교체되지 않았고, 국회 구성원들 중 상당수는 세습 의원이며, 지역 이익유도 정치가 이들의 주요 임무가 돼 왔다. 숙의보다는 표 계산, 여론에 대한 설득보다는 영합이 횡행해 의회에 대한 신뢰는 현저히 낮다(필자의 졸고 ‘근대일본의 공론정치와 민주주의’).
현재의 한국 국회도 이에 못지않다. ‘사리사욕’의 덩어리들이 토의라는 담금질을 통해 구름과 안개가 되기는커녕 덩어리 그 자체로 난무하고 있다. 내각(정부)은 ‘푸른 층루’를 나와 다른 데로 옮긴 탓인지, 또 하나의 덩어리가 돼 같이 막춤을 춘다. 100여 년 전 중국 혁명가 장빙린(章炳麟)은 선거를 해봤자 지역 토호들이 당선될 것이며, 이름은 국회이나 실은 간부(奸府)가 생겨나 백성들을 괴롭힐 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의정치는 반드시 선한 전제정치만 못하다”고 일갈했다(‘代議然否論’). 지금 중국 공산당의 입장과 흡사하다. 민주주의의 혼미에 넌더리를 낸 사람들이 이런 의견에 끌릴 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나는 위에 소개한 논문의 결론에서 아래와 같이 쓴 적이 있다. 혼미하는 민주주의 문제에 대면할 때 “우리는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험을 편견과 과장 없이 발굴해내어 그것을 내재적으로 해석한 다음 거기서 지혜와 시사를 얻어야 할 것이다. 그때 근대 서양의 성취를 상대화할 필요는 있겠지만, 그것을 무리하게 폄하하는 ‘아시아주의’적 자세는 금물이다. 이 같은 기본적 태도를 전제한 위에서 현재의 정당·선거·의회제도, 여론조달의 프로세스(여론조사의 남용, 인터넷의 위력), 유식자 회의의 역할(한국 헌법재판소의 막대한 권한과 역할은 이런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대중 집회의 효과와 문제점, 심지어는 지역구 선거·다수결의 정당성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디가 아픈지 잘 살펴보자. 민주주의를 응원한다.
박훈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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