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상상력의 원천이 된 ‘킴스 비디오’[안드레스 솔라노 한국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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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무 살 때 처음으로 미국 뉴욕에 발을 디뎠다.
이 영화는 킴스 비디오에 있던 엄청난 컬렉션이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로 옮겨진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지만, 그 속엔 영화를 향한 절박하고도 불건전한 애정으로 포장된 비열한 정치인과 마피아와 경찰과 젊은 도둑들이 등장하며 미국의 뉴욕과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와 한국의 서울을 숨가쁘게 오가는 훌륭한 스릴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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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이 나타날 때마다 푸른색으로 바뀔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사람들 틈에 밀리면서 길을 건넜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서퍼들과 배우 지망생, 모르몬교도, 펑크족, 블루칼라 노동자, 카우보이들이 뒤섞여 돌아다녔다. 우리는 모두 이 도시를 맛보기 위해 왔고, 혀끝이 따끔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달콤함과 증오와 잔인함. 그 대가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뉴욕에 머물렀고 그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뉴욕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고 빈집이나 연못이 채워지듯 도시가 나를 채우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킴스 비디오의 사장은 개업부터 자신의 가게를 다른 곳과 차별화하기 위해 장뤼크 고다르, 장피에르 멜빌과 같은 프랑스 거장 감독의 영화를 구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시아와 동유럽에서 만들어진 수천 편의 영화를 뉴욕에 소개하는 데 집착했다. 이후에 유명한 작품으로 이름을 날릴 짐 자무시, 스파이크 리, 하모니 코린, 코언 형제와 같은 감독들이 킴스 비디오를 자주 찾았다고 하는데, 분명히 킴스 비디오에서 빌린 많은 비디오를 통해 영화를 배웠을 것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같은 거물급 감독들도 킴스 비디오를 좋아했는데, 때때로 비서를 보내 새로 도착한 작품이 있는지 알아보곤 했다고 한다. 킴스 비디오의 가장 유명한 지점 덕분에 나 역시 핀란드 출신의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비롯해 여전히 좋아하는 여러 영화감독을 발견했다. 뉴욕에 도착한 지 몇 달이 지나서였는데, 내가 방문했던 지점은 이스트 빌리지의 ‘몬도 킴스(Mondo Kim’s)’였다.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곳의 냄새와 조명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런데 이런 그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킴스 비디오’는 뉴욕에 퍼진 한인 디아스포라나 아메리칸 드림에 관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김용만이 늘 만들고 싶었던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이번엔 감독이 아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말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사람은 2008년에 문을 닫은 한 지점의 전 직원인 데이비드 레드먼이다. 이 영화는 킴스 비디오에 있던 엄청난 컬렉션이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로 옮겨진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지만, 그 속엔 영화를 향한 절박하고도 불건전한 애정으로 포장된 비열한 정치인과 마피아와 경찰과 젊은 도둑들이 등장하며 미국의 뉴욕과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와 한국의 서울을 숨가쁘게 오가는 훌륭한 스릴러이기도 하다. 레드먼 감독은 다큐멘터리에서 영화가 살인이나 강도처럼 삶을 영원히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영화는 저지를 수 있는 모든 범죄 중 최고의 범죄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별다른 재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 하는 이 시대에, 킴스 비디오의 이야기는 영화(아니면 문학이나 음악, 미술)와 관계 맺는 다른 방법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킴스 비디오가 단순한 사업이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김용만이 가졌던 영화를 향한 꿈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로 바뀌었다. 누구나 몇 달러만 내면 참고할 수 있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경험들의 아카이브이자, 이후 만들어지게 될 수많은 영화의 영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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