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이 익어가는 시간[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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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되기 전 10년 동안 외국에서 박사후 과정 생활을 했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게 가장 달콤한 시간이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이도 둘이고 미래도 불안하고 가난했던 시절이 어떻게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로 변했을까? 그 사이 인생에 어떤 화학적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만약 돌아가고 싶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내게 물리학은 뭔가, 나만이 할 수 있는 물리학은 뭔가, 이런 생각으로 10년을 치열하게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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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이 끝나갈 무렵 좋은 논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가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 이 같은 인고의 시절을 보내야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꼭 학문뿐이겠는가. 끊임없는 노력만이 인생을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사회 역시 이런 동력으로 더디지만 앞으로 나아간다.
양자역학이 태동하던 유럽에서 박사후 과정 연구원의 역할은 컸다. 젊은 인재들을 후원하는 일은 학문의 지속성이라는 과제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당시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이끌어가는 유럽의 대학과 연구소는 새로운 인재들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지원하는 데 공을 들였다. 훗날 원자폭탄을 개발한 오펜하이머는 20대 초반에 독일 괴팅겐대의 막스 보른 밑으로 가서 양자역학에 화학을 융합한 스펙트럼 양자론 공부에 전념했다. 여기에는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닐스 보어의 결정적인 조언이 있었다.
미국인인 오펜하이머가 독일의 괴팅겐에서 보낸 3년의 시절은 그에게 국제적 감각을 키워줬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또 당시 괴팅겐대에서 함께 공부했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볼프강 파울리, 유진 위그너, 엔리코 페르미는 20세기 물리학을 짊어지고 나가는 핵심 인물들로 자랐고, 모두 노벨상을 받는 물리학자가 됐다.
대학교수가 된 지 20여 년, 그동안 수많은 제자가 나를 거쳐 갔다. 많은 제자가 기업에서 중추적인 일을 하는 중이고, 3명의 제자는 대학교수가 돼 후학을 가르치며 자신의 연구를 해나가고 있다. 한 명의 교수가 3명의 교수를 배출한 것은, 어찌 보면 3갈래로 학문의 뿌리가 퍼진 것과도 같다. 기다리면 그들도 언젠가 꽃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 점을 난 항상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마당에 10년 된 제법 큰 감나무가 있다. 가을이 되면 감을 딴다. 내 키 높이의 감은 내 것이고, 그 위에 달린 감은 새들의 몫이다. 감은 그저 말랑말랑해졌다고 해서 달콤한 홍시가 되지는 않는다. 떨떠름한 기운이 당분으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림이 필요하다.
대학의 젊은 연구원들이 연구비 문제로 대학을 떠난다는 소리가 들린다. 기초과학을 하고 있는 젊은 친구들의 연구가 다디단 홍시처럼 무르익기를 우리 사회가 지원해주고 지켜보고 기다려주면 안 될까? 안타깝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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