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향의 꿈[이준식의 한시 한 수]〈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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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소 사고 농사일 배워, 숲속 샘물가에 초가집 지으리.
세상만사 다 가치가 늘어난대도, 늙고 나니 내 문장은 한 푼어치도 안 되는구나.
남 보기에 멀쩡한 지위를 제 발로 걷어차고 낙향하는 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표적 사례가 위진(魏晉) 시대의 도연명, 그는 쌀 다섯 말의 녹봉(祿俸) 때문에 상관에게 굽신대지 않겠다며 한 고을의 수장 자리를 박차고 전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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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 살날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차라리 몇 해라도 산속에서 지내고 싶네.
높든 낮든 벼슬살이란 한바탕의 꿈, 시 짓고 술 마실 수 있다면 그게 곧 신선.
세상만사 다 가치가 늘어난대도, 늙고 나니 내 문장은 한 푼어치도 안 되는구나.
(買條黃牛學種田, 結間茅屋傍林泉. 因思老去無多日, 且向山中過幾年. 為吏為官皆是夢, 能詩能酒總神仙. 世間萬事都增價, 老了文章不值錢.)
―‘사직으로 위안을 삼다(사직자천·辭職自遣)’유기(劉基·1311∼1375)
남 보기에 멀쩡한 지위를 제 발로 걷어차고 낙향하는 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표적 사례가 위진(魏晉) 시대의 도연명, 그는 쌀 다섯 말의 녹봉(祿俸) 때문에 상관에게 굽신대지 않겠다며 한 고을의 수장 자리를 박차고 전원으로 돌아갔다. 비슷한 시대 제(齊)나라 왕을 보좌하던 관리 장한(張翰)의 행보 또한 그 못지않게 파격적이었다. 낙양에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 땅 소주(蘇州)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그립다며 홀연 벼슬을 내팽개치고 고향을 향해 수레를 몰았다. ‘일신상의 사유’ 운운하는 어정쩡한 가식에 비하면 외려 진솔하고 당당하다고 해야 할까.
시인은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책사(策士)로서 막강한 권세를 누리던 인물. 역사가들은 그를 한고조 유방(劉邦)을 보좌한 장량(張良), 삼국시대 유비(劉備)를 도운 제갈량(諸葛亮)에 비견하기도 한다. 그런 그가 벼슬살이에 회의가 들면서 낙향을 시도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과거 그와 갈등을 빚었던 한 재상이 황제에게 그의 불충(不忠)을 무고했고,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서둘러 조정으로 복귀해야 했다. 시인이 재낙향한 것은 중병으로 죽음을 앞둔 말년. 시주(詩酒)의 즐거움은 더이상 누릴 수 없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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