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를 구원할 웰메이드 수작[마데핫리뷰]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이런 영화를 기다려왔다. 러닝타임 141분 동안 꼼짝없이 빨려 들어간다. 스토리에 전혀 빈 틈이 없고, 긴장감은 용암처럼 끓어 오른다.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군사반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현실에 분노가 치솟다가, 권력욕에 눈이 먼 군인들이 민주주의를 짓밟아버린 역사에 좌절이 엄습한다. ‘서울의 봄’은 적당한 기획과 안일한 캐스팅으로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던 충무로를 화들짝 놀라게 만드는 뛰어난 작품이다. 여름과 추석 시즌을 지나면서 위기에 빠졌던 한국영화를 구원할 웰메이드 수작이 탄생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10월 26일 대통령 서거 이후, 10.26의 수사 책임자인 합동수사본부장을 겸직하게 된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은 모든 정보를 틀어쥔 채 권력 찬탈을 위해 군내 사조직을 동원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는 공수부대와 전방부대 9사단까지 서울로 불러 들이는 무모한 작전으로 반란을 밀어 붙인다.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은 전두광 일당의 쿠데타에 온 몸으로 맞서기 위해 우호 세력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고군분투하지만, 상황은 점점 불리하게 돌아간다.
전작 ‘아수라’에서 알 수 있듯, 김성수 감독은 감정적으로 뜨거운 영화에 일가견이 있다. ‘서울의 봄’은 그의 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온도로 쉴 새 없이 휘몰아친다. 역사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9시간을 영화적으로 긴박감 넘치게 재구성한 그는 흡사 그날의 실제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듯한 연출력을 박진감 있게 밀고 나간다.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를 불법으로 연행하는 순간부터 속도감을 높이는 이 영화는 전두광의 야비한 권모술수와 이태신의 투철한 군인정신이 부딪히면서 비등점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린다.
황정민은 권력에 대한 탐욕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전두광(이름에 ‘광’을 넣은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을 그야말로 미친 듯이 열연했다. 대머리를 만지고 히죽거리며 혁명을 떠들어대는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그가 화장실에서 터뜨리는 웃음소리는 실제 역사와 공명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악’에 쓰러져가는 ‘선’을 연기한 이태신 역의 정우성도 호연을 펼쳤다. 인간은 질 줄 알면서도 싸워야할 때가 있는 법이다. 정우성은 그러한 절박감을 인상적으로 연기했다.
12.12 군사 반란은 이미 사법적, 역사적으로 모든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이렇게 심장이 요동칠 만큼의 템포로 담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하룻밤 사이에 벌어졌던 쿠데타 현장을 실제 목격하는 듯한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한숨과 함께 짙은 패배감이 밀려온다. 그러나 이태신을 비롯한 몇몇 군인들의 사명감은 뭉클하게 다가온다. 굉음을 내고 달려오는 탱크에 홀로 맞서는 한이 있더라도, 누군가는 정의를 외치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김성수 감독은 말하고 있다. 그래야 ‘서울의 봄’이 올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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