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묶어두자”…결국 다시 예금
작년 판매된 고금리 상품 만기에도
정기예금 안 빠지며 잔액 되레 늘어
작년보다 28조 불어난 856조 기록
시장 변동성 확대로 안전자산 선호
예금금리 추가 상승 기대감도 겹쳐
3~6개월짜리 단기 상품으로 집중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이 10조원 이상 불어나는 등 시중 자금이 은행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10~11월 판매된 고금리 정기예금의 만기가 도래해 은행에서 뭉칫돈이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됐지만 우려했던 수준의 자금 이동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해 여윳돈을 단기 정기예금에 넣어두는 금융소비자가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9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이들 은행의 지난 10월 정기예금 잔액은 855조9742억원으로 전달보다 13조6835억원 증가했다. 9월엔 전달보다 2조6764억원이 줄었지만 한 달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하반기 들어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지난달까지 9월 한 달을 제외하고 매달 10조원 이상씩 불어 총 33조7000억원 증가했다.
당초 올해 가을은 지난해 은행권이 연 4~5% 고금리로 판매한 정기예금의 1년 만기가 돌아와 가입자 상당수가 예금을 해지하고 다른 투자처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10~11월 5대 은행 정기예금으로 몰린 돈은 66조80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역머니무브(자금이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 이동)’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11월보다 28조6880억원가량 더 많다.
은행권에서는 지난달 미국 국채금리가 뛰어 증시가 출렁이는 등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자 금융소비자들이 여윳돈을 은행에 두고 상황을 관망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예금금리가 더 오를 수도 있다고 예상하는 소비자들은 만기가 짧은 예금을 선호하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요즘 3개월이나 6개월 만기 정기예금으로도 자금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지난해 가을과 비교해도 정기예금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 8월 은행권의 만기 6개월 미만 정기예금 잔액은 189조7606억원으로, 전달보다 10조9790억원 증가했다.
예금이 원활하게 들어오면 은행은 정기예금 금리를 올리거나 은행채를 발행할 유인이 적어진다. 이날 은행연합회가 공시한 5대 은행의 대표 정기예금 상품 금리는 3.95~4.05%로, 은행별로 일주일 전과 같거나 0.1%포인트가량 내렸다. 은행의 예금금리가 정체하거나 내리면 대출금리 상승 압박도 덜할 것으로 보인다.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의 지표가 되는 코픽스(자금조달비용지수)는 국내 8개 은행이 취급한 수신상품의 가중평균금리다.
B은행 관계자는 “연 4%대 정기예금으로 자금이 계속 유입되면 코픽스는 좀 더 오를 수 있다”며 “다만 이미 대출금리가 많이 올랐기 때문에 향후 금리가 오르더라도 상승폭은 작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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