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이동관 구하기’ 전략에…“민주당 한 방 먹었다”
野 탄핵안 표결 무산, 72시간 후 자동폐기
노봉법·방송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건의키로
9일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에서 당초 예고한 노란봉투법·방송3법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철회한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라는 ‘믿는 구석’이 있다.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점한 더불어민주당(168석)의 법안 단독 처리는 어차피 막을 수 없지만, 향후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해 법 시행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필리버스터를 취소해 본회의가 끝나면서, 민주당이 계획했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 표결도 할 수 없게 됐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산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필리버스터를 안 하기로 제가 오늘 아침에 결정했다. 최종 결정을 알리기 5분 전까지 아무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필리버스터라는 소수당의 반대토론 기회마저 국무위원 탄핵에 활용하려는 악의적인 의도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 표결 저지를 위해 필리버스터를 철회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여당의 필리버스터를 활용해 쟁점 법안과 탄핵안을 통과시키려던 민주당은 난감한 입장이 됐다. 국회법상 탄핵소추안은 본회의에 보고된 지 24시간 이후부터 72시간 이내에 무기명 투표로 표결해야 한다. 관례상 본회의는 여야 합의를 거쳐야 열릴 수 있는데, 여당인 국민의힘이 탄핵안 표결만을 위한 본회의 일정에 동의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여야가 기존에 합의한 본회의는 이날과 오는 23일, 30일 등이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김진표 국회의장에 ‘72시간 내 본회의 개최’를 요구했다. 여야 합의가 어려우니 국회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달라는 것이다. 다만 김 의장은 “숙고하겠지만, 중대한 사안인 만큼 양당 간 협의해야 한다”며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발의했던 탄핵안은 72시간 이후 자동 폐기된다. 원내지도부는 정기국회(12월9일) 내 표결을 목표로 탄핵안을 다시 발의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앞서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 전 의원총회에서 이 위원장과 이정섭·손준성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당론으로 발의하고, 본회의에 보고했다.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쌍방울그룹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팀장이다.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는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으로 기소된 인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민주당이 ‘탄핵 대상’으로 수차례 거론해왔다.
그간 민주당에선 내년 총선 전 유리한 언론 지형을 구축하기 위해 탄핵을 추진해서라도 방통위 기능을 마비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또 여권발(發) 김포 서울시 편입 등 주도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정권 심판론’을 띄우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국민의힘의 ‘반전’으로 당분간 탄핵안을 표결하지 못하게 됐다. 이날 민주당 의총에선 “국민의힘에 한 방 먹었다” “허를 찔렸다”는 식의 말도 나왔다고 한다.
윤영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이 이동관 위원장과 위법 검사 2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막기 위해 반대토론마저 포기했다”며 “필리버스터 철회라는 꼼수까지 불사하며 언론장악 시도를 계속하겠다는 모습이 변화와 혁신을 약속했던 여당의 민낯”이라고 했다. 홍 원내대표도 “이 위원장과 검사 2인에 대한 탄핵안을 정기국회 내에 꼭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노조의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소송 제기와 가압류 집행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야당은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법안을 추진한 반면, 정부와 여당은 ‘불법 파업 보장법’이 될 거라며 반대해왔다.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절차를 변경하는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당은 야권 성향의 인사들이 공영방송을 장악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지만, 야당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위해 법안 처리가 필요하다며 단독으로 가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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