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신뢰’ 제 발로 걷어찬 환경부
환경부가 지난 7일 ‘일회용품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종이컵을 일회용품 사용제한 품목에서 제외했다. 플라스틱 빨대와 비닐봉지는 계도 기간을 연장했으나 기한은 정하지 않았다.
1년 전 정부는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며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했다. 비닐봉지도 무상 제공하거나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중소상인의 부담을 덜어주고 현장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규제보다는 ‘자발적 참여에 기반하는 지원정책’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아인슈타인은 ‘나에게 1시간이 주어진다면 문제를 정의하는 데 55분을 쓰고 5분을 문제 해결에 쓰겠다’고 했다. 흉내내 보자.
첫째. 신뢰 문제가 가장 크다. 지난 1년간 카페 계산대 옆에는 종이컵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카페마다 커다란 식기세척기로 한꺼번에 컵을 닦느라 손님이 많을 때는 실내 가득 머그컵이 널려 있기도 했다. 어렵게 계도기간을 거쳤고 귀찮지만 익숙해질 때쯤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이 황당함. 앞으로 환경부가 어떤 규정을 새로 만들건 언제 또 그만둘지 모른다는 의심을 사는 건 당연하다.
반면, 지구를 구한다는 숭고한 명분에 동참하는 과정 자체가 친환경 생활방식을 촉진하도록 각성제 역할을 했을 텐데, 그것도 공염불이 된 게 가장 아깝다. 종이컵은 그냥 하나의 컵이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친환경타운으로 안내하는 신호등 같은 것이었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행동으로 각성이 된 사람은 집에서 전구 하나라도 덜 켜고, 물도 아끼고, 택시 대신 버스, 버스 대신 걷는 식으로 생활습관이 달라지게 된다. 그런 연쇄작용을 환경부가 모를 리 없다.
둘째. 정체성 문제다. 산업통상자원부였다면 이렇게 배신감이 들진 않았을 것이다. 환경부가 어떤 부처인가. 환경부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산업부가 아닌 환경부가 소상공인의 어려움에 공감해 규제 먼저 풀 생각을 했다는 게 놀랍다.
셋째. 의도의 문제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대다수 언론이 어렵게 이끌어온 친환경정책을 후퇴시켰다고 사설 등을 통해 질책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표’를 얻으려고 중요한 정책을 조변석개해도 되는지, 그런다고 얻어지는지 입맛이 쓰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정보 문제다. 환경부 차관은 “종이컵을 규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아니다. 프랑스, 대만,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실내에서는 못 쓰고, 종이컵에 담아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 르완다, 케냐, 방글라데시 등은 일찍부터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했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로 휘청대고 있다. 환경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전 지구촌 문제이기에 이제 환경부는 외교, 안보, 재난, 에너지, 산업, 수출, 교육, 문화, 해양, 항공 등 거의 모든 것과 관련돼 있다. 나는 그래서 환경부야말로 부총리급 격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환경부는 스스로의 가치를 모르는 것 같다. 스티븐 M R 코비는 저서 <신뢰의 속도>에서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뢰이고, 신뢰의 속도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했다. 선거를 앞두고 너무 머리 쓴 분들께 꼭 들려드리고 싶은 말이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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