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필리버스터 포기 ‘고육책’…허 찔린 야 “철회 후 재발의”
이동관 탄핵안 ‘자동 폐기’ 노리는 국민의힘 ‘철회 불가’ 입장
민주당, ‘일사부재의’ 발목…오늘 본회의 무산 땐 “30일 유력”
국민의힘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당초 예고한 노란봉투법·방송3법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포기한 것은 이날 탄핵소추안이 보고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구하기’ 목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번 주말까지 법안과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 통과를 이어가려던 더불어민주당은 전략 싸움에서 밀린 꼴이 됐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여야는 필리버스터 장기전을 대비하는 모양새였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방송장악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는 정쟁에 불과하며 이에 대해선 방송3법 개정안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국민께 상세히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박주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국민의힘에서 각 법안마다 필리버스터를 하겠다고 예고하고 있어서 다 처리되려면 약 5일이 소요된다. 이 5일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본회의 전 개최돼 주요 법안들을 처리하는 법제사법위원회는 여야 기싸움으로 파행됐다.
민주당이 본회의 직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손준성·이정섭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당론으로 발의하기로 하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변했다.
민주당의 노림수였다. 탄핵소추안은 본회의에 보고된 때로부터 24~72시간 안에 무기명 투표로 표결한다.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동안 본회의가 열려 있으니 여야 간 협상을 통해 표결만을 위한 본회의 일정을 새로 잡지 않고 탄핵소추안을 표결할 기회라고 본 것이다. 민주당의 계획대로 탄핵소추안은 이날 오후 개의된 본회의에 바로 보고됐다.
이에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전격 철회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고 본회의가 산회하면 24~72시간 내 다시 본회의를 열지 않는 한 탄핵소추안은 자동 폐기된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어차피 통과를 막을 수 없는 노란봉투법, 방송3법 필리버스터를 강행하기보다 필리버스터 포기로 일단 탄핵소추안 표결을 저지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라는 ‘최후의 카드’도 남아 있다. 윤 원내대표는 본회의 산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 아침에 결정했다. 최종 결정 알리기 5분 전까지 아무도 몰랐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일단 탄핵소추안 발의를 철회했다가 오는 12월 정기국회 회기 중 또다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산회 직후 “방송장악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하면 이런 꼼수까지 쓰는구나 싶다”며 “(필리버스터 포기를) 충분히 예상은 했었다”고 했다.
홍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김진표 국회의장을 찾아가 “탄핵소추안이 72시간 내 처리될 수 있도록 추가로 본회의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김 의장은 “여야가 본회의 개최 일정을 합의해오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어떤 식으로든 12월 정기국회 안에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 번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내에 다시 발의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의의 원칙’이 걸림돌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일사부재의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 일단 발의된 탄핵소추안을 철회했다가 재발의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홍 원내대표는 “내일(10일) 오후 6시까지 국회의장과 여당에 본회의를 열도록 설득해보고, 불가피한 경우 탄핵소추안을 내일 오후 6시경 철회해서 이틀 연속 본회의가 열리는 시점에 다시 추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여야가 합의한 정기국회 내 본회의 일정은 11월23일, 11월30일~12월1일이다. 이 중 이틀 연속 본회의가 붙어 있는 11월30일~12월1일 탄핵소추안을 다시 발의해 처리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탄핵안은 본회의에 보고되는 순간 법적 효력이 발생하고, 72시간 뒤 자동 폐기되는 것도 부결에 해당한다”고 했다. 일사부재의 해당 여부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문광호·신주영·김윤나영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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