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창문 밑 저수 탱크 도움”, “개조한 침수주택엔 안전 인증제”
“물 잠겼던 반지하 97%가
탈출 가능한 창문 안 갖춰”
주거 약자 대책 제안 봇물
반지하 일반 가구는 물론 침수 경험이 있는 반지하 가구조차 10곳 중 9곳 이상이 비상시 탈출 가능한 창문 등 보조 출입문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침수됐던 집인지 모르고 이사 온 경우도 많아 ‘안심 주택 인증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시가 지난 8일 한국주거학회와 함께 서울시청에서 개최한 ‘2023 서울주거포럼’에선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각종 정책 제언이 쏟아졌다. 이번 포럼은 ‘주거약자와의 동행’을 주제로, 주거취약계층 현황을 파악하고 미래 주거정책 방향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주거취약계층은 주거 문제를 자력으로 개선하기 어렵고 주거 수준이 열악하며 주거권이 침해돼 위기에 노출된 가구로 정의할 수 있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쪽방, 컨테이너·움막 등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포함한다.
‘서울시 주거약자를 위한 거주성 및 주거환경 개선방안’을 발표한 김석경 연세대 교수는 침수 이력(2010~2022년 국토교통부 목록)이 있는 2500가구를 포함한 반지하 총 4500가구를 표본조사했다. 이 중 300가구를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통해 주거 불안 상황 인식 등을 알아봤다.
그에 따르면 전체 반지하 가구 중 주택 침수 피해를 본 경우는 11.6%였다. 이 가운데 침수 피해는 1회(81.2%)가 가장 많았는데, 대부분 지난해 수도권 홍수 당시 피해가 발생했다(81.9%)고 밝혔다. 반지하 가구 중 97.8%가 탈출 가능 창문이나 보조 출입문이 없었다. 특히 침수 이력이 있는 반지하 가구도 97.5%가 보조 출입문 등이 없다고 답했다.
침수 주택인지 모르고 이사를 오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조사에서 침수 이력이 있는 반지하에 사는 이들 중 ‘주택 침수 피해가 있었다’고 응답한 경우는 55.6%에 불과했다. 나머지 44.4%는 ‘피해가 없었다’고 답했는데, 침수 주택이지만 거주자가 이사 온 뒤로 침수 경험이 없었던 사례다.
김 교수는 “주택 침수 이력을 알려주는 정보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침수 주택을 개조해 임대하기 전 (기본 주거환경 정보 제공 등) 거주성을 확보하면 집주인을 지원해주는 ‘안심 주택 인증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고시원 현황을 전수조사한 유해연 숭실대 교수는 “고시원은 고시생들 거주공간에서 주거취약계층 1인 거주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고시원은 방끼리) 워낙 인접해 주거공간 높이를 반영하는 등 1인 주거 최소면적 기준을 바닥면적에서 거주환경 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거주자 관리 개선 시스템 적용과 모니터링 강화, 가구별 맞춤형이나 거주기간 및 건축물 유형에 따른 신모델 개발 등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존 온양고 미국 노트르담대 교수는 도심 저소득층과 사회초년생을 위해 ‘마이크로 하우징’(초소형 주택)을 활용한 저렴하고 안전한 주거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고시원과 반지하 주택에 가봤다면서 “고시원은 대피로가 하나밖에 없거나 복도가 좁고 창문이 없어 화재 발생 시 구출이 어려울 것”이라며 “(침수를 막기 위해) 창문 아래나 보행로 밑에 저수 탱크를 설치해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재해와 재난으로부터 주거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선제적 대책이 수립돼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우명제 서울시립대 교수는 “반지하 주택은 현재 침수우려지역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불허 가능한데 건축법 개정을 추진해 장기적으로 불허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원석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건이 터져 특정 계층이 부각되고 긴급대책이 발표되는 정책 프로세스가 일반화되면서 지원정책도 파편화돼 있다”며 “주거약자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 언제까지 몇% 해소한다는 등의 적극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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