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누가 선거법을 뒤로 돌리려 하나

기자 2023. 11. 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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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이 6개월 뒤로 다가왔다. 그런데 선거를 치를 게임의 룰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회, 더 정확히 말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선거법 개정 법정시한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임의 룰은 선거 1년 전인 지난 4월에 이미 정해졌어야 한다. 그러나 두 정당은 상대를 탓하며 차일피일 미뤘다.

이 결과는 예견된 것이었다. 올해 4월까지 선거법 개정을 마무리하려면, 지난해 가을쯤에는 당론이 확정되고, 겨울을 거치면서 양당 간 협상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두 정당 모두 관심이 없었다. 국민의힘은 멀쩡한 당대표를 쫓아내고 새로 전당대회를 치르면서 정신이 없었다는 핑곗거리라도 있다. 그런데 국회 다수당이자 정부·여당을 압박해야 할 민주당 지도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실 민주당의 당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지난 대선 직전 다양성과 민주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치제도를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선 후에도 선거결과와 상관없이 이 개혁을 추진할 거라고 약속했다. 현 지도부는 전당대회 후에도 다시 한번 추진을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론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당내 선거를 이유로 법정시한이 정해진 선거법 개정을 협상조차 안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결국 용산 눈치를 보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할 만도 한데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지난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선거법은 다시 주목을 받았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운영 시한이 다가왔고, 국정감사 전 선거법 개정을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국회의장과 여론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단식과 이어진 국정감사 일정으로 선거법 논의는 또 표류했다. 그리고 11월을 맞았다.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12월12일부터 시작되고, 정개특위의 활동시한도 이달이 마지막이다. 초읽기에 몰린 셈이다. 그런데도 선거법 논의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다. 양당이 ‘밀실 협상’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흔히 민주주의 꽃이라고 한다. 투표권은 신성하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그 투표의 의미를 결정할 선거제도는 민주주의의 혼이 깃든 그릇이다. 그래서 협상의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국민의 투표와 의석비율을 일치시키겠다는 지난 선거법 개정의 정신은 위성정당이 만들어지면서 훼손되었지만, 적어도 그 논의 절차만은 투명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양당 지도부가 비례대표 공천권을 행사하기 위해 병립형으로 회귀하기로 합의했다는 이야기가 떠돌 뿐이다.

이 밀실 합의에는 위성정당을 방지할 방법이 없다는 변명이 있다. 그러나 변명이다. 지난 총선 때, 우리 국민들은 위성정당을 잘 몰랐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어떤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인지 잘 안다. 3% 정도의 유권자만 위성정당을 심판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수도권의 판세는 뒤집힌다. 위성정당은 위험한 일이 된다.

지난 총선에서는 위성정당이 아니면 비례에서 찍을 당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동형 선거제도가 유지된다면 이념과 노선이 다양한 정당들이 출현할 것이다. 건전한 보수나 더 나은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도 있을 것이다. 지역구에서 당선 가능성이 있는 지지 정당을 찍을 유권자가 비례대표에서 엉뚱한 반대쪽의 정당을 찍을 가능성도 별로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개혁적 정당이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굳이 위성정당을 만들겠다는 당은 기득권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다수당인 민주당이 이탄희 의원이 발의한 위성정당방지법을 통과시키면 된다. 국고보조금을 50%나 삭감당하면서 위성정당과 합당할 정당은 없다.

이준석 신당이나 조국 신당이 민주당 지지층을 잠식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연동형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것은 경쟁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 제도를 조작하자는 입법권의 사유화다. 민주당 지지층이 유승민·이준석 신당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반성과 성찰을 해야지, 거기에 제도적 장벽을 치겠다는 것이 어떻게 진보와 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의 태도이겠는가. 균형발전에도, 정치개혁에도 선뜻 나서지 않는 민주당은 사실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정치에선 권력이 중요하다. 공학적 셈법도 필요하다. 민주당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당 간판은 내리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의회주의자였던 김대중, 선거법 개정을 위해 대연정까지 걸었던 노무현,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정당을 표방하는 정당이라면, 한 발짝 진전했던 선거법을 뒤로 돌리는 선택을 그리 쉽게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관후 정치학자

이관후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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