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경제도 특수부식으로
금융감독원의 힘이 이렇게 세진 줄은 미처 몰랐다.
금융제도를 만들고 금융회사들을 감독하는 곳을 금융당국이라고 부른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있다. 금융위는 공무원 조직이고, 금감원은 민간 기구다. 금융위는 정책을 담당하고, 금감원은 현장을 감독한다. 업무 범위를 놓고 갈등을 벌일 때도 있지만, 힘은 금융위가 세다는 게 상식이라고 여겼다. 금융위가 금감원의 예산과 인사 등에 대한 심의와 승인 권한을 갖고 있어서다.
아니었다. 지난 5일 공매도 전면 금지를 발표할 때 두 금융당국 수장의 표정을 보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표정은 어두웠고, 이복현 금감원장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금융위는 위기 상황도 아닌데 공매도를 금지하는 것은 국제적인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대로 얼마 전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무차입 공매도를 적발한 이 원장은 일시적으로 공매도를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뜻을 정부에 전달했고, 결국 이를 관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이 김 위원장을 이긴 셈이다.
이 원장은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통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였던 시절,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2016년 국정농단 사건 등을 함께 수사했다. 지난해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에 반발하며 검찰을 떠난 그를 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역대 최연소 금감원장으로 임명했다. 부장검사로 검찰을 떠난 그를 2000명이 넘는 조직의 수장에 앉힌 것 자체가 윤 대통령의 신임을 보여준다.
이 원장의 행보는 윤 대통령의 ‘어퍼컷 세리머니’처럼 막힘이 없다. 대신 거침없는 발언으로 쓸데없는 논란을 부를 때도 많다.
최근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하고 있는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시세조종 의혹 수사가 대표적이다. 금감원은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을 소환하면서 이례적으로 포토라인까지 설치했다. 법무부도 피의자 등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포토라인 금지 규정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감원이 포토라인을 만든 것은 과도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 원장은 “불법 거래를 통해 이룩하고자 하는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곧 카카오의 SM 인수를 무산시키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에 “금감원의 권한 밖”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카카오의 혐의가 유죄로 확정되더라도 금융당국이 카카오에 주식 처분 명령을 내릴 권한은 없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시중은행장과의 만남은 시장에 혼란만 더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 원장은 당시 “개별 은행이 대출금리를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는 룸(여지)이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의 압박에 시중은행들은 일제히 대출금리를 낮췄는데, 이후 가계대출이 급증하면서 경제에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이 대출규제에 나서자 현장에서는 “금리를 내리면서 대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검사가 잘하는 것은 수사하고, 구속시키는 일이다. 판단 기준은 유죄냐, 무죄냐의 이분법이다.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는 경제의 영역에 검사의 기준을 적용했다가 이런 혼란을 부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공매도 전면 금지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 미칠 영향에 대한 그의 발언도 이해하기 힘들다. MSCI는 선진국지수 편입 조건으로 공매도 전면 허용을 요구하는데 “외국인 기관의 신뢰를 얻고 MSCI 지수에 편입하기 위해 공매도 운영이 필요하다는 건 잘 모르겠다”니. 정부가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추진하는 이유도 증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이 원장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공인회계사 자격도 있다. 이를 배경으로 검찰에서 대형 경제사건을 여러 차례 수사했으니 경제를 전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도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경영학석사(MBA) 자격이 있다. 더구나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재무부와 금융위 등에서 주로 금융시장 관련 업무를 했다.
그런데도 금융시장 문제를 결정하는 데 김 위원장 대신 이 원장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 시장은 ‘어퍼컷’ 한 방으로 때려눕힐 상대도, 구속해서 일벌백계할 대상도 아니다.
김석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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