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아버지의 해방일지’서 찾은 장대
사람의 어떤 일생이란 고향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점점 이주하다가 종내에는 그 고향으로 누운 채 돌아가는 것. 덕유산이 내리뻗다가 아직 차렷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는 곳에 나의 고향은 있다. 그래서 들은 좁고 골은 깊다. 마을 앞에 서면 장대 하나 걸어도 될 만큼 너무 가까운 앞산과 뒷산. 그사이 따갑게 떨어지는 햇살은 알밤처럼 토실토실해서 그것 먹고 자란 거창사과는 그야말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다.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는다. 소설은 처음의 ‘아버지가 죽었다’와 마지막의 ‘나는 울었다’라는 정직한 두 문장을 비집고 웃고 우는 사연들로 빼곡하다. 관처럼 묵직한 문장의 사이마다 구례를 무대로 지리산의 능선과 골짜기가 첩첩이 들어 있다. 아버지와 딸을 이어주는 길고 기이한 장대 하나 걸렸다고 해도 되겠다. 빨치산 활동을 기어코 해낸 망자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생전 어머니와의 대화 한 대목을 보면, 그 어떤 주의고 사상이고 간에 그저 사람에 대한 예의와 사물에 대한 태도가 장대처럼 분명했던 분.
구례(求禮)는 ‘예를 구한다’는 뜻을 고장의 이름으로 삼은 곳이다. 예전 지리산 갈 때 용산역에서 밤기차 타고 구례구역에서 내려 재첩국 한 그릇 땡기고 성삼재로 올랐다. 그때 신새벽의 희붐한 공기 속에서 지리산 능선을 우러르며 배꼽인사를 올리기도 했다. 소설의 끝은 장례의 마지막 절차를 다루는데 ‘구례하듯’ 매우 감동스러운 장면이 있다. 이제 나도 구례에 가면 따라 하고픈 동작이 생겼다. 저물기를 기다려, 어둠이 더욱 진해지기를 기다려, 캄캄 한밤중에 내 머리 둘레의 공중을 휘휘 저어 보는 것. 구례의 밤하늘에 길게 드리워진 장대 하나를 찾아서 사물과 사람 사이에 척, 걸쳐두고 싶기에.
모든 이의 고향인 지하를 지키는 뿌리는 줄기보다 희다. 빛 하나 없는 깜깜한 곳이기에 흙빛이거나 검은색이 아닐까 싶지만 그것은 나의 나태한 짐작에 불과하다. 뿌리는 그곳에서 저 밝은색을 유지하려고 얼마나 공부하고 있을 것인가. 또한 물은 무색무취하다. 저 푸른 하늘에서 나온 비가 어떻게 저런 색일까. 뿌리를 적시고 나간 물은 온갖 간난신고를 겪으며 물질을 품은 뒤 바다를 거쳐 다시 비가 되어 이 세상을 순환하는 것. 나무와 구름을 연결하는 수직의 장대처럼 어제는 비가 내렸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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